북한이 11일 조선신보 베이징발 기사를 통해 북미 베를린회동 사전합의 내용을 공개한 것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남북대화나 6자회담에서 논의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흘려왔다. 따라서 이날 보도는 8일 개막한 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가 북한의 핵시설 폐쇄에 따른 에너지 지원문제 때문에 난항을 겪자 지난달 열렸던 베를린회동 내용을 공개해 “미국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북한은 이번 6자회담에서 폐쇄조치의 대가로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의 중유 50만톤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과 미국이 수용하기 힘든 양이다. 게다가 일본은 납치문제를, 러시아는 채무탕감 문제를 들어 에너지 지원 동참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일본 러시아를 압박해 에너지 지원대열에 끌어들이고, 미국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신보가 “에너지 지원은 산수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으로 풀 사안”이라며 “조선(북한)의 주된 목적은 에너지 지원을 통해 미국의 정책 전환 의지를 가려 보려는 것”이라고 밝힌 점도 이런 의도를 방증한다.
북한은 그동안 6자회담에 불참하는 이유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을 꼽아 왔다. 적대시정책은 미국의 금융제재나 침공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자기들 편의대로 ‘에너지 문제’라고 설명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조선신보가 이날 공개한 △30일 이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해제 △초기조치 60일 이내 완료 △북미관계 정상화 워킹그룹에서 테러지원국 및 적성국교역법 우선 논의 등 베를린회동 사전합의 내용 자체도 흥미롭다. 북한의 핵심 요구인 BDA 문제 해결을 포함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같은 장기과제까지 미국이 양보했다는 것은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미국의 강한 의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내용 공개는 북한의 의도와 정반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중간선거 이후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미국 내 강경파가 상대적으로 온건한 크리스토퍼 힐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와 국무부 협상라인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조선신보는 또 북한이 이번 회동에서 한미 합동군사연습과 미국의 한반도 주변 무력증강을 거론하며 미국의 불침공 의사 확인을 요구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북한 내 강경세력을 의식해 회담 대표단이 일부러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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