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최남단인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 옆으로 거대한 서해대교가 손에 잡힐 듯 지나가는 이곳이 바로 평택ㆍ당진항의 중심이다. 부산신항, 광양항과 더불어 정부가 3대 국책항만으로 개발 중인 곳이다.
9일 오후 찾아간 컨테이너부두는 갓 잡아올린 생선처럼 활력이 넘쳤다. 높이 50m가 훨씬 넘는 갠트리크레인(대당 50억원)이 쉴새 없이 컨테이너를 집어올려 1만2,000톤급 컨테이너선에 선적하고 있었다.
수도권과 중부권에서 밀려들어오는 수출용 컨테이너들로 야드(야적장)는 가득 차 있었다. 이중 80% 이상이 칭다오(靑島) 등 중국으로 간다.
컨테이너부두 옆 자동차수출전용부두. 공장에서 막 출고돼 반짝반짝 빛나는 9,000여대의 자동차들이 줄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자동차수출선박의 데크(문)가 열리고 자동차 행렬이 꼬리를 물며 배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마치 도미노게임을 보는 듯 했다. 평택항만㈜ 민병우 전무는 “매년 70만대 이상을 수출하는 평택항은 울산항(100만대)에 이어 2위의 자동차수출항”이라고 소개했다.
급증하는 평택항의 물동량에 대응하기 위해 해양수산부는 올해 컨테이너부두와 자동차부두 등 7선석을 준공하고 2011년까지 30여개의 선석을 더 건설할 계획이다.
평택항운노조 작업반장 김경섭(48)씨는 “특히 평택항은 노동자 평균 나이가 30대 초반으로 젊어 더욱 활기차다”고 말했다.
평택항 개발로 주변지역도 크게 달라졌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배후주거지인 평택시 안중면은 2002년 읍으로 승격했다. 이어 포승면도 지난해 말 인구 2만명을 돌파하며 읍으로 승격했다.
일자리도 많이 생겨 취직한 주민도 적지 않고, 국제여객선터미널이 들어서자 ‘다이공’(代工ㆍ보따리상을 일컫는 중국말)으로 변신한 주민도 있다.
여객터미널 하역직원 권명재(50)씨는 “보따리상들이 갖고 나가는 것은 프린터 카트리지부터 초코파이까지 각양각색이고, 들여오는 것은 주로 값싼 중국 농산물”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토박이인 평택항홍보관 이한범(53) 관리소장은 “학생들이 20리씩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할 만큼 한적한 갯마을이 서해의 관문이 될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나도 가끔씩 깜짝 깜짝 놀랄 만큼 하루하루가 변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평택항에서 서해대교를 건너면 바로 당진항이다. 당(唐)나라로 가는 가장 가까운 나루(津)였던 곳이다. 이곳에는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용부두가 있다. 현재 여기서는 서해안 최대 규모인 20만톤급 부두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공사인 ㈜엠코 윤찬수 부장은 “배가 접안할 안벽을 만들기 위해 무게 9,400톤에 10층 아파트 1개 동 크기의 케이슨(콘크리트박스)을 제작, 바다로 투입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 부두는 철광석 수입용으로 이용된다. 평택이 종합무역항이라면 당진은 공업항인 셈이다.
당진항에서 25㎞ 떨어진 대산항은 평택항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연말 개항했다. 주변에 자리잡은 대산석유화학단지, 대죽지방산업단지 등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중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창구인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개점휴업상태이다. 정기항로가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은 모두 공장 숲이고 마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대산읍에서 대산항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사는 “지난해 말 부두가 완공 이후 배 한 척이 들어왔을 뿐”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텅 빈 부두와 드넓은 야적장은 을씨년스러웠다. 대산유화단지 내 삼성토탈 최수원 물류팀장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합성수지제품을 평택항까지 운송하느라 물류비용이 많이 든다”며 “하루빨리 대산항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대산항의 경우 현재 선사 및 하역사 등과 항로 개설을 협의 중이어서 이르면 3월 말 취항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인천항에 이어 평택ㆍ당진항, 대산항 등을 대규모로 개발하는 것이 중복과잉투자이며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조삼현 국제해양수산물류연구소 부소장은 “한ㆍ중교역량 급증은 서해안권 항만 개발을 가속화시키는 동시에 인접 항만 간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무조건 규모를 키우기 보다 각 항만의 기능을 통합조정해 효율성과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서해안권 항만들은 경쟁이 아닌 상호보완관계를 갖춰 나갈 것”이라며 “개발계획도 물동량 증가에 맞춰 적정한 수준으로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택ㆍ당진ㆍ서산=전성우기자 swchun@hk.co.kr
■ 항만에는 이색 직업도 가득
‘줄잡이, 도선, 예선, 통선, 고박….’
선박의 입ㆍ출항 과정이 복잡한 항만에만 있는 직업들이다.
줄잡이는 배가 접안할 때 선원이 던지는 줄을 잡아 부두 말뚝(계선주)에 묶고 나갈 때는 풀어주는 사람이다. 단순해 보이는 일이지만 5,000톤급 화물선 1척의 경우 줄의 재질(섬유질, 철사 등)이나 야간, 공휴일 등에 따라 할증요금이 붙어 최하 10여만원에서 최고 30여만원까지 받는 ‘고수익’ 업종이다.
도선사(導船士)는 항만을 출입하는 선박에 탑승, 안전한 수로로 안내하는 사람으로 비행기 조종사처럼 ‘파일럿’으로 불린다.
5년 이상의 선장 경력과 해기사 자격증이 있어야 도선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세계 어느 항구이든, 도선사 없이는 입항할 수 없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예선(曳船)은 대형선박을 끌어서 접안을 도와주는 배들을 일컫고, 통선(通船)은 항구에 정박 중인 대형선박의 사람을 육지로 실어 나르는 소형 선박이다. 고박은 항해 중 화물이 흔들리지 않도록 선체에 고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평택ㆍ당진항에는 현재 도선사 17명, 예선사 84명이 일하고 있다. 2003년까지는 인천항의 도선사들이 출장을 다녔으나 입출항 선박이 급증하면서 3년 전 자체협회가 생겼다.
또 통선과 줄잡이업 등에 160여명이 종사하고 있으나 이 인원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자동차의 선적도 분업화되어 있다. 자동차수출선박의 내부는 10층이 넘는 초대형 주차장이다. 먼저 운전요원이 자동차를 각층 입구에 대면 주차요원(키카)이 차를 넘겨받은 뒤 신호수의 지시에 따라 지정된 위치에 주차한다.
수출용 차는 주차공간을 줄이고 흠집을 방지하기 위해 양쪽 백미러가 접혀있어 운전실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고박요원이 밴드를 차량의 견인고리에 걸어 선체에 고정해야 선적작업이 끝난다. 컨테이너와 자동차 등의 하역작업은 평택항운노조 조합원 270여명이 전담하고 있다.
평택·당진·서산=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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