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의료법안을 발표하며 정부는 환자의 주권 강화와 의료에 대한 규제 완화로 환자, 의사 모두가 이익이 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의료제도를 비영리업에서 영리업으로 바꾼 혁명적 제도 변화이다. 의료법인을 사고 팔 수 있고,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춘 의료기관 개설도 가능하다.
양ㆍ한방병원 개설이 가능하여 한 곳에서 2가지 치료도 받을 수 있고, 병원 내에서 각종 쇼핑과 관광, 숙박도 할 수 있다. 의료광고가 대폭 허용되고, 진료비 할인과 환자 유인이 가능해져 환자는 정확한 정보를 통해 싸고 질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의료기관은 이제 진료비 수입만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의료기관이 이렇게 번 돈으로 최신 의료기계 도입과 의료시설 개선, 임금 인상 등 의료서비스에 재투자시킨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럼에도 20여개의 시민단체가 모인 의료연대회의는 의료기관의 영리화가 의료의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투기장으로 만든다며 의료법 개정에 반대, 정권퇴진 불사까지 주장하고 있다. 의료단체는 의료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의사노예법'이라며 집단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정부에 대한 불신과 의료정책의 실패가 한 원인이다.
정부는 그동안 의료인 양성, 의료기관 개설운용 모두를 지나치게 민간에 의지하여 오면서도 의료수가 규제나 행정명령 등 통제를 강화하였다.
환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설명 의무, 표준진료지침 제정 등이 의료인들에게는 피해의식 때문에 새로운 규제로 비치고 있다. 이런 불신은 민간의료에 의지하면서도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은 정부에 있다.
참여정부는 의료를 산업화시킴으로써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하여 정보기술(IT)산업처럼 국가의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의료제도 변화가 정부의 의도대로 순수하게 진행될지 의문이다.
의료는 환자와 의사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해 시장경제 원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필연적인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양ㆍ한방협진병원제도와 같이 의료접근성과 편의성이 좋아지면, 대형할인마트에서 더 많이 물건을 사듯, 의료비용이 줄지 않을 것이다.
의료인 입장에서도 유리하지 않다. 거대자본과 결합한 의료인은 의료시장을 독과점하여 재벌로 성장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의료인은 평사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환자유치능력이 떨어지는 의료인은 도태될 우려가 있다. 부대사업의 부도로 입원중인 환자가 쫓겨나고, 범죄자금이 의료법인을 만들어 돈세탁을 할 수도 있다.
시장경제 원리를 따라야 할 분야와 의료ㆍ교육처럼 공적분배 원칙에 충실하여야 할 분야가 있다. 시장을 거스른 부동산정책으로 국민의 한숨을 쏟아내게 한 참여정부가 시장에 친하지 않은 의료에 대하여 무리하게 영리화 정책을 밀어붙여 국민들이 또다시 한숨짓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의료법 개정은 필요하다. 정부는 환자 중심의 의료법 원칙이 어느 한쪽의 이념이나 직역이기주의에 밀려 왜곡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의료 양극화, 의료 오남용의 우려가 있거나 의료투기적인 독소조항은 없애야 한다.
의권 위축이나 규제 강화의 오해가 있는 조항은 명확하게 다듬어야 한다. 법개정과 아울러 공공의료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지원 확대를 통하여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현호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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