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폐기 초기조치의 핵심인 영변 핵 시설 가동중단의 성격을 놓고 북한과 미국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9일 새벽 회람된 합의문서 초안의 ‘폐쇄(Shut down)’라는 표현을 놓고 북미는 이날 수석대표회의와 양자회동에서 신경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처럼 ‘동결(Freeze)’이라는 표현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제네바 합의보다는 좀 더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8일 개막식 후 “우리는 무엇을 동결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것은 본격적인 문구 협상에 앞서 선수를 친 것이다.
동결이나 폐쇄 모두 재가동이 가능한 개념이지만 재가동에 필요한 시간 차이는 크다. 제네바 합의 당시에도 동결이라는 표현은 ‘언제라도 재가동할 수 있게 접근과 수리 등을 허용하는 것’으로 정의됐다.
영변 5MW 원자로의 경우 2002년 12월 북한의 동결해제 조치 후 핵 연료봉 교체 등 준비작업을 거쳐 50일 만에 재가동됐다.
합의문서 초안에 나오는 폐쇄는 원자로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개념이다. 수리 등 보수조치는 할 수 없다. 재가동을 위한 준비작업을 봉쇄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변화로 북한이 재가동에 착수할 경우 동결보다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동결은 가동중단 상황에 대한 감시를 위해 원자로 주변 등에 많은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야 하지만 폐쇄는 원자로가 있는 공장 출입문에만 감시카메라를 달면 된다.
동결이 스위치만 끄는 것이라면 폐쇄는 공장 문을 닫는 개념인 셈이다. 미국은 폐쇄를 계속 주장하겠지만 북한으로서는 이를 호락호락 받아 들일 리 없다.
당초 미국은 초기조치로 ‘사용 불능화(Disablement)’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베를린 북미회동 당시 힐 차관보가 불능화를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요구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불능화는 원자로의 노심(핵 연료봉이 들어가는 통) 등 핵심부품을 뜯어내는 것으로 반영구적인 가동중단을 말한다. 완전한 핵 폐기와 폐쇄 사이의 중간단계로 볼 수 있다. 미국은 합의문서 초안의 폐쇄라는 표현에 반대하면서 불능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원하는 동결과는 거리가 더 멀어지게 된다. 6자회담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설사 이번에 이 개념을 포함시키지 못하더라도 2단계 조치로 불능화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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