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회담은 ‘핑퐁 게임’처럼 진행됐다. 강 대표가 개헌 등 쟁점 현안에 대해 공세를 취하면 노 대통령이 받아 치는 식이었다.
실무진들이 사전에 만든 ‘공동발표문’을 빼고는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의견일치를 본 사안이 거의 없었다.
▦대통령 선거 중립
강재섭 대표= 대선 관리를 진심으로 중립적으로 해 달라. 노 대통령이 선거 중립 의지를 표명하면 국민이 좋아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은 정치인이므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없다. 또 정치적 중립 하겠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현대 정당 정치의 현실이 그러므로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단, 선거운동은 안 하고 있고 앞으로도 안 할 것이다. ‘선거 공정 관리 하라’는 당연한 말 좀 그만 하라. 전과 없는 사람에게 자꾸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정치 공세다.
강재섭= 내각을 맡고 있는 여당 의원들도 본연의 위치로 복귀시켜야 한다.
노무현= 본인들에게 판단 기회를 주는 게 인사의 덕목이고, 또 대통령이 판단할 일이다. 누구더러 내려오라는 건 간섭이다.
강재섭=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주자를 비판하는 것은 삼가 달라.
노무현= 제발 나를 선거에 끌어들이지 말라. 선거전략 차원으로 나를 공격하지도 말라. (야당이) 정치 공격을 하면 정치적으로 답변하고, 정책으로 하면 정책으로 답하겠다.
강재섭= 아무리 민생 문제라도 대선의 해에 10~20년 뒤를 위한 정책을 내놓는 것은 장밋빛 공약으로 비칠 수 있다.
노무현= 임기가 1년 남았다고 그간 진행해 온 프로젝트들을 접으면 국가에 득이 되겠나. 한나라당은 (집권하면) 5년 짜리 정책만 할 것인가. 그러다가는 나라가 망한다.
▦개헌 문제
강재섭= 대통령은 개헌, 정계개편 같은 정치행위에서 손을 떼고 민생과 국정에 전념할 것을 부탁한다.
노무현= 국정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일종의 기본도 안된 사람이라는 불신을 깐 것으로, 예의가 아니다. 개헌은 정치 행위가 아닌 개혁의 문제다. 정계개편엔 개입하지 않겠다. 열린우리당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강재섭= 최근 여당 의석이 줄어들고 대통령이 제대로 통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개헌안을 내는 건 판 흔들기를 꾀하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이 18대 국회 때 개헌특위를 만들어 국회 중심의 개헌을 추진하겠다.
노무현= 한나라당도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면서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개헌안 등을) 엘리트와 국민에게 제안하면 토론을 거쳐 의견이 수렴되는 게 민주주의다.
토론을 하지 않으려면 여야 대표들끼리 의석 숫자에 따라 도장 찍고 끝내자는 건데, 그건 사리에 맞지 않다. 대통령의 책임을 다 하는 차원에서 개헌안을 발의할 테니 찬성이든 반대든 해 달라. 국민으로부터 도덕적 심판을 받고 싶다.
▦사립학교법 재개정, 사법개혁 및 안보
강재섭= 한나라당의 사학법 재개정안 통과에 협조해 달라.
노무현= 오늘은 내 언급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언급을 피하고 싶다. 사학법 문제는 여야가 절충, 타협하는 안을 존중하겠다. 사학법에 관한 한 대통령은 당에 영향력이 없다. 대통령은 당 대표가 아니다.
강재섭= 정세균 신임 의장 체제에선 지금과 상황이 달라지지 않겠나.
노무현= ….
강재섭= 사학법 개정안 시행령 실시를 유보해 달라.
노무현= 그 문제는 사전 논의하지 않은 것이라 일단 검토하겠으나, 여야가 잘 합의하기 바란다. 사법개혁 문제는 문민정부 때부터 논의를 시작한 것이니 도와 달라.
강재섭= 사법시험제도가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 점은 있다. 법조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 판ㆍ검사를 임명하는 법조일원화 방안을 제안한다.
국민의 안보 불안을 없애 달라.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지나친 대북지원은 북한의 오판을 초래할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를 자주라고 말하는 건 열등감의 발로이다.
올해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작권 이양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말고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
노무현= 그 이야기는 안보관 차이로 받아 들이겠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 안보가 불안해 졌다는 점은 동의하지 못하겠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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