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진 격이다. 새해 벽두 시원한 프리킥골로 온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천수(26ㆍ울산)가 여과되지 않은 부적절한 발언으로 순식간에 한국 축구의 ‘영웅’에서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이천수는 그리스전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8일 “해외 이적에 대한 약속을 문서화 해주지 않으면 소속팀 훈련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으로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리스전 승리로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축구 열기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이었다. 선수와 구단간 계약 관계를 드러내놓고 부정한, K리그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든 위험 천만한 발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십대 중반을 넘어선 이천수가 아직도 프로 선수로서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적에 ‘걸림돌’이라고 여겨진 구단에 공개 인터뷰를 통해 원하는 바를 얻겠다는 발상으로, 더욱이 울산의 실질적 오너인 정몽준 회장을 거론하며 구단 관계자들을 압박하겠다는 생각은 월드컵 등 큰 무대 경험이 많은 K리그 간판 스타의 언행이라고 보기엔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또 이천수는 위건 어슬레틱과 이적 협상 과정에서 훈련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근 1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프로 선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몸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이천수의 프로답지 못한 이번 발언은 자신의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적료를 울산이 양보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자신은 10억원이 넘는 특급 연봉을 받고 있으면서 구단의 중요한 수입원인 이적료를 일방적으로 양보하라는 요구는 억지에 가깝다. 헐값을 받더라도 유럽 빅리그에 우선 진출하고 보자는 생각도 K리그와 한국 축구 전체의 위상을 고려할 때 그다지 환영 받을 일은 못 된다.
이천수의 돌출 발언은 9일(한국시간)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의 보도를 통해 전세계에 타전됐다. 상식 이하의 언행을 보인 선수를 받아 줄만큼 빅리그는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다.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이천수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더욱 안타깝다.
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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