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빈 터 곳곳에 고층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각종 중장비가 재건축을 위해 낡은 건물을 부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도로 건설 등 사방천지가 공사장이다. 아제르 정부는 도로와 항만 등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개발사업에만 2011년까지 700억 달러(약 65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풍부한 원유 매장으로 ‘불의 나라’로 불리는 아제르바이잔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옛 소련 시절 변두리 저개발 이슬람 국가였던 아제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유례없는 고유가에 따른 오일달러 덕분에 200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세계 1위(26.4%)를 차지했고 지난해는 30%로 추산된다.
힘의 뿌리는‘제2의 중동’인 카스피해의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카스피해에는 러시아, 중동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석유가 묻혀있다.
추정 매장량(2,600억 배럴)이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2,627억 배럴)와 맞먹는다. 아제르바이잔은 70억 배럴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하루 100만 배럴까지 공급량을 늘리는 2009년이 되면 GDP가 현재의 2배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1990년대 말부터 아제르에 활발하게 투자했고 비교적 늦게 진출한 일본도 총 투자액이 32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경제 협력에 열심이다.
매장량이 20억 배럴로 추정되는 이남(Inam) 광구는 영국의 BP(25%)와 미국의 쉘(25%)이 지분의 절반을 차지한다.
송유관 확보 전쟁도 불꽃 튄다. 특히 2005년 5월 개통한 BTC라인은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카스피해 석유 수출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바쿠(B)와 트빌리시(Tㆍ그루지야)~세이한(Cㆍ터키)을 잇는 이 송유관은 1,770k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엘산(30)씨는 “수 십년 동안 아제르바이잔 경제는 러시아에 의지해야 했다”며 “BTC라인은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경제적 독립을 이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BTC라인 건설 비용 40억 달러의 대부분을 지원했고 송유관 보호를 이유로 미군 배치 방안도 추진 중이다. 미국의 구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데다 아제르는 남부러시아 이란 터키 아프가니스탄 등과 맞붙어 있어 군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쿠 시민들은 ‘미국의 개입’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엘산씨는 “잘 먹고 잘 살게 됐는데 뭐가 문제냐”며 “러시아는 과거 우리를 2류 국민 취급해 교육도 안 시켰는데 그에 비하면 미국은 우리를 돕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바쿠 중심가는 명품 의류 가게와 고급 가구점이 즐비했다. 도로는 최신 외제차가 가득했다. 신호등이 거의 없고 울퉁불퉁 엉망인 도로 상태를 보면 다소 생뚱맞지만 1인당 실질 구매력이 4,500달러를 넘을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
급격한 경제 성장 탓에 서민들의 근심도 크다. 회사원 라밀(26)씨는 “9개월 동안 생수 값이 2배로 뛰었다”며 “집을 몇 채씩 가진 부자들은 임대료만으로도 배불리 먹지만 없는 사람들은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졸업생 10명 중 6명은 취직을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에너지 개발 외에도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켜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KOTRA 모스크바 무역관 관계자는 “외제차를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그 중 현대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 뿐만 아니다. 바쿠 시내의 허름한 아파트 조차도 두 집 중 한 집은 에어컨이 있는데 70%이상이 ‘LG 전자’마크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차와 LG전자가 한국 회사라는 걸 아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아제르 외국어대 한국어과를 졸업한 피단(23)씨는 “한국은 기업보다 오히려 2002년 한일월드컵이나 태권도 같은 스포츠로 알려진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이남 유전 개발 등 아제르바이잔 에너지 시장 진출을 노리며 뒤늦게나마 시장 조사와 정보 수집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5월 노무현 대통령 방문 때 이남 광구 공동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아제르 정부의 이남광구 지분 50% 중 40%(전체의 20%, 4억 배럴)를 넘겨 받는다는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바쿠=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한국 기업 투자 아직은 '걸음마'
아제르바이잔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게는 아직 낯선 땅이다. 투자 진출도 이제 막 첫 발을 뗀 걸음마 단계다. 수출대상국 순위 124위, 수입 대상국 155위(KOTRA집계, 2004년 기준)라는 수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많다. 특히 원유 매장량이 20억 배럴에 달하는 이남 광구에 들이는 공은 상당하다.
지난해 5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제르를 직접 찾아 양국간 ‘포괄적 에너지ㆍ자원 협력 약정’을 맺고 아제르석유공사(SOCAR)와 한국석유공사 사이의 지분 인수 협상을 챙겼다.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 확보에 국가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나서야 하며 이남 광구 진출은 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도로ㆍ전력ㆍ통신 등 기초 인프라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박차를 가하는 분야다. 아제르 진출을 추진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아제르 정부는 에너지 분야 뿐만 아니라 전체 산업 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어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며 “주택 재건축, 신도시ㆍ도로 건설은 물론 통신망, 교통 체계, 전력 구축도 노려볼 만 하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이미 지난해 아제르 국영전력회사와 발전소, 송배전 설비 등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바쿠=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류광철 한국 대사 "교류 늘려야"
류광철(54) 주 아제르바이잔 대사는 7일 “아제르는 자원도 없이 짧은 시간에 큰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한다”며 “한국의 진출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아제르는 또 다른 기회의 땅인 만큼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대사는 이어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개발권을 아낌없이 내놓던 아제르 정부가 최근 ‘돈이 되는’ 사업의 개발권을 되 사들이는 등 ‘자원민족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현지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그러나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중인 아제르 정부는 신도시와 도로, 항만, 발전소 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에 기초 인프라 구축과 건축자재 분야는 상당히 유망하다”고 밝혔다.
한국과 아제르는 역사적ㆍ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다고도 했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따라 나라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듯 아제르 역시 러시아 이란 터키 그리고 최근 미국까지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류 대사는 “아제르는 개혁ㆍ개방을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발 빠르게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기업들과 함께 활발한 아제르 진출의 폭을 넓히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바쿠=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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