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장르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규모가 큰 것이 역사극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거의 역사적 인물을 극중 인물로 형상화한 것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다. 국내 연극 뮤지컬 드라마 부분에서도 역사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TV 드라마는 대하사극이 시청자를 폭넓게 확보하고, 뮤지컬도 <명성황후> 가 10년 이상 관객에게 사랑받는 유일한 대형 창작물이다. 역사극이 시대를 초월하여 대중적 공감대를 얻는 이유는 역사극이 지니는 동시대적 비유와 상징 때문일 것이다. 명성황후>
● 역사극이 공감대를 얻는 이유
지난해 경기문화의전당측에서 정조(正祖)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극본 연출을 의뢰했을 때, 선뜻 맡기로 한 것 또한 현장예술가로서 지금 이곳의 역사현실에 대해 나름대로 작가적 관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역사극을 쓰고 연출하는 입장은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다.
원 텍스트의 사실적 자료를 벗어날 수 없고, 민감한 동시대적 현실에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미묘한 상황 속에서 정조를 소재로 한 역사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 는 지난해 7월 수원에서 첫선을 보였고, 올해 3월 서울 오페라하우스 공연을 앞두고 있다. 화성에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연극적 상상력이 덧입혀진 정조는 의외로 심약하고 병치레가 잦은 지식인의 모습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정도로 개혁적인 인물이었던 정조. 그는 실학이란 자생적 실천사상을 수용했고, 수원에 화성을 건축하면서 수도로 집중된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시키려 한 지방분권주의자이기도 했다.
천민에게 성과 이름을 주고 일정한 과정을 거쳐 양민으로 편입되는 통로를 마련하면서 평등주의자의 면모 또한 보여준다. 이러한 정조의 치적은 조선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통치자의 모습으로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작 정조 개인의 통치 스타일은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꼼꼼하게 업무를 챙기는 학자형 공무원 체질이다. 매사 논리적인 냉정성을 유지하면서 선왕 영조의 카리스마적 권위와 전혀 다른 자신만의 통치 스타일을 드러내었다.
그는 기존의 대신들에게 존댓말을 쓸 정도로 예우를 했으며, 심환지 등 자신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노론 척신들까지 껴안았다. 심환지는 노론 척신을 대표하는 인물이면서도 정조의 임종을 지키는 순간까지 등용된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분명한 적들만 멀리하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인물들로 대체했는데, 이 과정에서 실학자들이 대거 등용되는 기회를 잡는다. 그래서 정조 치하에서는 노론 보수 정객과 실학자들이 중심을 이룬 신진세력이 공존하는 정치적 구도가 지속된다.
후세 사가들은 정조의 이런 보수ㆍ진보 공존의 정국 운영을 우유부단함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조는 보수와 진보가 급진적으로 충돌하고 투쟁하는 정치구도를 원하지 않은 듯하다.
이런 공존의 정치구도 속에서 정조의 치적은 세종 이후 최대의 업적으로 평가받으면서 조선 왕조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정조는 당시 동서양을 가로질러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 세계질서 개편의 흐름을 읽어내었고, 이를 문예부흥과 산업발전의 과정으로 이끌었다.
● 통치자의 형이상학을 배우라
그는 상당히 세련된 국가 전문 경영자였으며 지식인이었다. 그는 신문 방송이 없던 시대에도 효과적으로 대중적 여론을 이끌어낼 줄 아는 쇼맨십도 갖추고 있었다. 정조가 화성을 짓고 서울에서 수원까지 행차하는 모습은 당대 최대의 볼거리였고, 그는 이 절호의 무대에서 효심에 젖어 우는 임금의 모습을 슬쩍 보여주면서 백성을 탄복시켰다.
정조에 대한 연극작업을 끝내면서 남기고 싶은 대사 한 마디. "어리석은 것들아, 아름다운 것이 힘이다." 화성 축조공사에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던진 그의 말은 통치자의 형이상학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누가 이 시대의 정조가 되려 하는가? 그렇다면, 정조의 통치술을 참조할 일이다.
이윤택 극작ㆍ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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