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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야근' 불 밝힌 사무실…아! 피곤한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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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야근' 불 밝힌 사무실…아! 피곤한 내 인생

입력
2007.02.0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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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저녁 시간은 오토바이 소리로 요란하다. 주변 식당에서 공단 야근자들의 저녁 식사를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다. 매일 저녁 줄잡아 20여대가 왔다 간다. 공단의 한 직원은 “평소에도 야근을 자주 하지만, 요즘 내부 경영평가 때문에 야근이 더 잦아져 밤 10시 정도에야 퇴근을 한다”면서 “몸이 피곤해도 할 일을 쌓아두고 무작정 퇴근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씁쓸히 웃었다.

굴지의 전자업체에 다니는 홍모(33)씨는 ‘자취생 남편’이다. 일주일에 4일 야근은 기본이고 집에 빨리 들어가야 밤 10시다. 평일 집에서 밥 먹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아내와 대화할 시간도 없다. 그는 “퇴근하면 얼굴보기 무섭게 잠에 곯아떨어지고 주말엔 피곤하다며 잠만 잔다”며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회사 분위기 상 야근수당 달라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꼬박꼬박 받았으면 아마 연봉이 두 배로 뛰었을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에게 야근은 운명이다. 할 일을 쌓아 두고 칼퇴근 하는 ‘간 큰’ 직장인은 꿈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대다수 직장인들은 몸 망가지고 ‘빵점 아빠’ ‘무심한 친구’로 찍히는 것을 감수하며 오늘도 저녁식사를 주문하고 야근에 들어간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여기 “야근은 결코 운명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직장인들이 있다. 일도 좋고 돈도 좋지만, 건강과 가정을 지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항변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12월 ‘저녁 7시 정시 퇴근’을 공약으로 내건 김형중 후보를 위원장에 당선시켰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은행원들의 고단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은행은 야근이 많은 대표적인 업종 중 하나다. 정시 퇴근은 언감생심이다. 고객을 맞는 공식 업무는 오후 4시30분에 끝나지만, 이후 마감ㆍ결재 업무 등에 밀려 일을 처리하다 보면 밤 9시, 10시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시중은행의 기업담당 부서에서 일하는 이모(35)씨는 “평일 집에서 저녁 9시뉴스를 본 게 언젠지 가물가물하다”며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한참 예쁜 세 살 난 딸 아이와 못 놀아주는 것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형중 노조위원장은 “정시 퇴근 공약을 내세운 건 퇴근시간이 늦어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조합원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라며 “무작정 야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력 재조정 등을 통해 정시 퇴근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팀을 구성, 최근 임시 노사협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제출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조는 회사가 요구하는 주ㆍ야간 2교대 근무를 1년 가까이 반대하고 있다. 2교대 근무는 공장을 24시간 가동하면서 주간조와 야간조가 교대로 일하는 방식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낮 근무만 해온 근로자들로선 철야 근무에 대한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노조 관계자는 “전주공장 근로자 중에는 24시간 2교대로 근무하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넘어온 사람이 많다”며 “밤을 꼬박 새워 일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건강에 해로운지를 알기 때문에 쉽사리 철야 근무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일반 조합원은 “철야 노동으로 더 받을 수 있는 20만~30만원은 우리 같은 노동자한테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며 “그래도 돈 보다는 건강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노조는 대신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일하는 주간연속 2교대를 제안했지만 회사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근 기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회사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주의”라는 주장이다. 실제 현대차 전주공장 노조는 “늘어난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회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중견 제조업체의 박모(39) 과장은 “야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회사가 있어야 내 직장도 있는 건데 무작정 건강과 가정만 내세우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의 조기홍 산업보건국장은 “직장생활에서 야근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야근의 업무 효율성이나 근로자의 건강도 고려해야 한다”며 “효과적인 인력 배치와 업무 분산을 통해 야근을 줄이는 방향으로 노사 간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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