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국일보 연재물 <길 위의 이야기> 를 읽고 묘한 생각이 들었다. '우파의 길, 좌파의 길'이란 제목이 붙은 그 글에서 글쓴이 이기호는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부담감 때문에 자신이 평생 우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근원적 한계를 인식했다고 고백했다. 길>
글을 읽은 뒤, 우파보다 좌파가 더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건 좀 불공평하다는 작은 반발도 생겼다. 진정 잘못된 세상을 바꾸겠다면, 자신이 먼저 깨끗해져야 하며, 그때 도덕성이나 삶의 진실성은 좌파든 우파든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옳든 그르든 이기호의 글은 좌파, 우파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시대의 좌파는, 거친 목소리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설파하는 투사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날카로운 지식인의 모습보다는, 생활 속에서 양심껏 살아가고 타인의 양심까지 지켜주는 성실한 사회인상을 요구 받는다.
21세기에 접어든 뒤에도 우리 사회에는 좌우의 이념 갈등이 여전하다. 역사를 보는 눈도, 사회를 보는 눈도,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미국에 대한 생각도 서로 다르다. 언뜻 양측이 경합하는 듯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미 승부가 났다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시장주의가 몰아쳤고 그것과 맞설 힘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는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성장주의, 성과주의, 배금주의에 숨이 막힐 정도다. 승자는 싹쓸이하고 패자는 구석으로 몰리는 씁쓸한 양극화가 우리의 자화상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돈에 혈안이 돼있고, 돈만 된다면 다소의 잘못이나 부도덕도 용인하는 그런 세상이다. 지향점도, 작동원리도 다른 정부는 기업 흉내 내기에 바쁘다.
그래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이라는 책에서 이런 모습을 '기업사회'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약자를 안고 못난 자를 격려하겠다는 좌파의 가치가 더 존중돼야 하지 않을까.
그 동안 우파는 노무현 정부를 좌파로 몰아 부쳤고 대기업 노조를 이기적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를 좌파로 보는 게 어이가 없지만, 어쨌든 그런 식의 규정을 통해 좌파의 무능, 좌파의 공허함, 좌파의 부도덕성을 질타했고 국민적 공감도 어느 정도 얻었다. 그러나 좌파 진영 인사의 행태를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좌파의 목소리 자체를 누르는 것은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동구권이 몰락한 직후 한 잡지에 실린 우파 지식인의 글이 생각난다. 그렇게 동구권이 무너지고 좌파의 설 자리가 좁아질수록 좌파는 더욱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기호는 좌파 되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진정한 좌파라면 도리어 쉬울 수도 있겠다. 양심을 인정받는 진정한 좌파가 하는 주장이라면,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넘어 약자와 함께 가자는 좌파의 가치가 쉽게 팽개쳐질 것 같지는 않다.
박광희ㆍ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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