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계에서는 흔히 ‘명절 불경기’라고 말한다. 명절을 전ㆍ후로 한 시기는 여행을 위한 이동 인구가 가장 적을 때. 거사를 앞두고 혹은 마치고 사람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이 때가 바로 교통체증도 상대적으로 덜하고, 여행지의 사람도 덜 붐비는 ‘여행의 적기’이다. 두 눈 질끈 감고 떠나자. 평소 아름다운 풍광이 사람들의 홍수에 묻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곳. 수도권에 인접했거나,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일 터이다. 바로 서해안의 섬들이다.
# 안면도 / 충남 태안군
‘편안히 자는 섬’ 안면도(安眠島)는 이제 더 이상 잠만 자는 섬이 아니다. 2002년 국제꽃박람회 이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어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과 연육교가 추가로 놓인 뒤, 섬으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가 됐다.
한반도에서 6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삼남의 세곡을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조선 인조때 천수만 북쪽과 서해를 잇는 운하를 만들었고 그 결과 육지와 떨어져 섬이 됐다.
안면도 하면 흔히 꽃지해수욕장, 백사장 포구 등을 떠올린다. 아름다운 꽃지해수욕장의 일몰, 백사장 포구에 널린 대하와 꽃게가 마치 안면도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그런 곳에만 사람들이 몰린다. 그러나 안면도는 섬 전체가 명승으로 뒤덮인 곳이다. 꽃지와 백사장을 무시하고 제대로 안면도를 감상해보자.
첫째, 꽃지해수욕장을 제외한 다른 해수욕장을 찾는다. 안면도를 관통하는 국도, 혹은 해안도로를 따라 10여 개의 해수욕장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작은 섬에 10여 개이니 보나마나 작은 해변이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면도의 서쪽 해안은 우리나라 서해안 중에서도 가장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다. 해안선이 길기 때문에 웬만한 해변에 들어서도 꽃지 못지않은 광활함을 느낀다. 썰물 때라면 미친 듯이 달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모두 이정표를 세워놨다. 이름이 재미있다 싶으면 우회전, 모래로 된 비포장을 조금만 달리면 바로 바닷가이다.
둘째 안면도 자연휴양림과 인근의 솔숲을 꼭 감상할 것. 조선시대부터 자라기 시작했다는 토종 붉은 소나무 안면송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다. 곧게 뻗은 소나무들은 궁중의 목재와 배를 건조하는 데 많이 쓰였고, 경복궁을 지을 때도 사용됐다. www.anmyondo.com
# 제부도 / 경기 화성시
우리나라에 서해안에는 소위 ‘모세의 기적’이라고 해서 썰물이면 바닷물이 열리는 곳이 많은데, 제부도도 그 중 하나이다.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와 제부도 사이의 2.3km의 갯벌이 하루에 두 번씩 어김없이 갈라진다. 1980년대 중반 이 갯벌 바닷길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놓이면서 제부도는 하루에 두 번씩 육지와 교통하게 됐다. 이후 신비로운 자연 현상과 서울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수도권에서는 강화도 다음으로 인기 있는 여행지로 뛰어올랐다.
제부도를 상징하는 것은 바닷길을 건너면서 왼쪽으로 볼 수 있는 매바위(鷹岩)이다. 예전에 매들이 많이 서식해 이름이 붙여졌지만 이제는 이름뿐이다. 대신 관광객과 촛불을 든 불자들만이 매바위 인근에 북적인다. 밀물이 되면 육지와 떨어져 섬이 되는 이 바위는 조수의 영향으로 점점 깎여나간다고 한다.
제부도에 들면 아이들이 신난다. 갯벌체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지락, 동죽, 가무락, 댕가리, 칠게, 남작게, 밤게, 민꽃게, 쏙(바닷가제의 일종)을 구경할 수 있다. 관광지로 개방된 이후 개체수가 확연히 줄었지만, 대신 한 마리라도 발견하면 환호성이 터진다.
제부도의 한쪽은 절벽이어서 예전에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몇 년 전 물 속에 쇠기둥을 박고 바위 절벽 옆으로 섬을 일주할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겨울의 바닷바람을 맞기에 그만이다. 가끔 사진동호인들이 누드 촬영모임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제부도로 들어가는 물때는 조금씩 바뀐다. 미리 알아보고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제부도는 정보화 마을이어서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jebumose.invil.org
# 영흥도 / 인천 웅진군 영흥면
영흥도 행은 바다와 내내 함께 하는 길이다. 우선 시화호 방조제를 달린다. 갯벌을 막아 생긴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회자됐던 시화호방조제는 길이가 12.4km이다. 오른쪽으로는 서해바다가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시화호가 눈에 들어온다. 방조제를 건너면 대부도이다. 대부도는 가히 ‘바지락 칼국수의 대부’이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식당의 둘 중 하나는 바지락 칼국수집이다.
예전에는 대부도에서 영흥도쪽으로 통하는 길이 하나였지만 이제는 몇 곳 생겼다. 오른쪽을 주시하면 이정표가 친절하게 나 있다. 먼저 도착하는 다리가 선재대교. 제부도와 모래시겨처럼 생긴 선재도를 잇는 연도교다. 선永뎬?작은 섬이어서 금세 지나간다. 눈 앞으로 영흥대교의 높은 교각이 들어온다.
원래 영흥도는 배로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었다. 한국동남발전㈜이 영흥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다리를 놓았다. 국내 기술로는 처음으로 건설된 해상 사장교이다. 다리가 잘 생겼다. 영흥도라는 섬의 또 하나의 명물이다. 이 다리가 놓이면서 새로운 섬 여행지를 찾던 수도권 여행마니아들이 일시에 몰렸고, 이제는 만만치 않은 여행객을 받아들이는 섬이 됐다.
물론 다리 하나 때문에 명물이 된 것은 아니다. 십리포, 용담리, 장경리해수욕장, 통일사, 서어나무군락지, 해군영흥도전적비 등 명물이 많다. 그 중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십리포해수욕장. 자갈과 모래가 이어진 아담한 해변이지만 서해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겨울이면 특히 연인들이 많다.
이 곳에는 영흥도 명물인 서어나무 군락지가 있다. 약 150년 전 이 마을 사람들이 방풍림으로 심어 놓은 것인데 현지토양과 잘 어우러져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구불구불한 모습이, 마치 나무가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섬에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한 초기, 워낙 쓰레기를 숲속에 많이 버리고 가는 바람에 이제는 녹색 철책으로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다. www.yeongheungdo.com
권오현 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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