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소설가 중에서도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꼽힌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놀랄 만큼 생생하게 구현해내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정도였다. 잃어버린>
평범한 버터 케이크 마델린과 어머니가 끓여 준 차(茶)를 통해 어릴 적 주변 풍경과 일상 감각을 극사실적으로 기억해낸 소설은 연구의 실마리가 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기억력이 없었다면 프루스트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었다는 게 과학적 측면의 작가 연구 결과로 전해진다.
■ 시간과 기억의 능력에 수리적인 상관관계는 없다고 한다. 10년이나 30년 전의 일들은 기억할 수 있으나 한 달이나 1년 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는 흔하디 흔하다. 새 기억이 형성되기 이전에 옛 기억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사실 기억은 그 순간의 흥미 신념 열중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 게 통설이다.
특히 기억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은 기분이라고 한다. 우울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과거의 실패나 부당한 일에 대한 기억이지만 전기충격요법을 통해 이를 유쾌한 기억들로 대체하면 기분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20여 년 전 한국일보가 '잊는 버릇'이라는 의욕적 기획물을 연재했던 기억이 난다. 불가항력적 자연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같은 유형으로 반복되는 현상을 심층적으로 되새기고 추적했던 기사였다.
그런 일들의 원인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반성하고 상기시키면서 금세 달아올랐다가 바로 잊어버리는 우리의 고질적 습성을 고백하는 기획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형 사고에서부터 일상의 소소한 잡사(雜事)들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것을 샅샅이 다루다 보니 연재는 상당 기간 계속됐고, 그 지면은 호평을 샀었다.
■ 열린우리당의 탈당 의원들이 믿는 구석이 있다면 바로 이런 잊는 버릇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탈당입네, 신당입네, 또는 그럴 듯한 말로 정계개편이라고도 하지만 결국 배신과 위약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일을 수없이 목격하고 경험했으면서도 때만 오면 쉽게 잊고 속아넘어가는, 이 현상이야말로 기억 연구의 대상이 아닐까.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어제 칼럼에서 이를 기회주의로 설명한 것은 또 다른 시각이다. 상호 간에 의도적 전략적 선택의 결과라는 게 그의 해석인데, 과연 우리 버릇은 어떤 건지 눈을 부릅떠 볼 일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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