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 허공을 가르는 검의 바람 소리와 피를 내뿜으며 쓰러지는 사무라이의 장렬한 죽음이 무시로 등장하는 검술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일본영화 <황혼의 사무라이> 는 사무라이 세계를 다루되 화려한 검술이나 공허한 명예를 위해 스러져가는 사나이들의 거친 삶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막부시대 말기 고단한 삶을 살다 간 한 사내의 몸을 빌려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의 한 단면을 비추고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되묻는다. 황혼의>
아내를 폐병으로 잃은 하급 무사 세이베이(사나다 히로유키)는 노모를 봉양하고 두 딸을 키우는 데 진력하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내 간병을 위해 대대로 내려온 보검까지 팔아치운 그는 관청 창고에서의 일과가 끝나면 동료들과 술 한 잔 마시지도 않고 집으로 직행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황혼의 사무라이’. 맘껏 목욕을 할 수도, 새 옷을 살 수도 없을 만큼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그에게 젊은 시절 연정을 품었던 여인 도모에(미야자와 리에)가 다가서고 갈등의 씨앗이 뿌려진다.
<황혼의 사무라이> 의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다. 세이베이의 별명과 함께 근대화를 눈 앞에 두고 몰락해 가는 사무라이 계급의 빛 바랜 처지를 빗댄다. 그러나 영화의 전반적인 색조는 밝다. 카메라는 궁핍하고 기댈 곳 없는 인생이지만 겸애와 가족애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긍지와 자존심을 관조하듯 그려낸다. 황혼의>
고요하면서도 세밀한 몸짓을 통해 숨막히는 긴장감과 함께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폭발력을 지닌 후반부의 결투 장면은 두고두고 복기해도 아깝지 않은 명장면. 48편으로 구성된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를 만든 일본 ‘국민감독’ 야마다 요지의 첫 시대극이다. 요지 감독의 작품으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2003년 일본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포함해 13개 상을 휩쓸었다. 8일 개봉, 15세. 남자는>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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