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패, 왈가닥, 또순이. 하지원(28)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악착같이 최선을 다할 듯한 그가 영화 <색즉시공> 으로 408만 관객을 합작했던 윤제균 감독, 임창정과 다시 만났다. 재회의 장은 달동네 사람들의 눈물어린 삶을 희망찬 웃음으로 버무린 <1번가의 기적>. 하지원이 연기한 명란은 동양 챔피언 출신 장애인 아버지를 모시며 복서의 꿈을 키우는 역이다. 깡패들의 그악스러운 행패에 주먹으로 맞서고 어두운 현실보다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는 모습이 그의 평소 이미지와 포개진다. 색즉시공>
“이거다 싶으면 밀고 나가는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복서 연기를 위한 준비 과정은 넘기 힘든 산이었다. 세계 챔피언 출신 변정일씨로부터 지도를 받은 기간은 6개월. 실제 복서와 마찬가지로 줄넘기부터 시작해 섀도 복싱과 스파링 등의 전과정을 거치며 땀을 흘렸다. “매일 10라운드 경기 치르듯 2분 운동하고 30초 쉬기를 1시간 30분 동안 반복했어요.”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만들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겸했다. 스파링 때문에 생긴 시퍼런 멍을 얼굴에 달고 다녔다. 달걀과 쇠고기로 멍든 피부를 달래고 다음날 다시 링에 오르기를 반복했다. “첫날엔 많이 울었어요. 어머니가 저에게 처음으로 ‘너 힘든 거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릴 정도였어요.”
<1번가의 기적>은 ‘색’(色)으로 과장된 웃음을 쏟아냈던 <색즉시공> 과는 결을 달리 한다. 웃음을 덜어낸 자리에 가슴을 누르는 드라마가 들어 앉아 있다. 윤 감독은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지원에게 출연을 제의했다. “진정성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 상업영화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겠다”는 윤 감독의 진심이 마음을 흔들었다. “영화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은 시나리오이지만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감독님의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그럼 시나리오만 잘 써주세요’라고 말했죠.” 색즉시공>
하지원은 “살아오면서 영화 제목처럼 작은 기적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기적은 무대에 오른 적도, 연기를 따로 배운 적도 없이 두드린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단숨에 합격한 것이다. “그땐 떨어져도 후회는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제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겁 없이 덤빈 거죠. 제가 좀 ‘깡’이 센 듯해요.”
그는 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디딤돌이 돼준 대학을 곧 떠난다. 입학한 지 9년 만이다.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다 보니 또래보다 늦게 학사모를 쓰게 됐다. 그는 “부끄럽다”며 말끝을 흐렸지만 이내 “기쁘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연예 활동하며 졸업 못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을 감안하면 자랑스럽기도 해요.”
지난해 주가조작 연루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무혐의 판정을 받은 지금 마음이 홀가분하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으나 성장통으로 여긴다.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처음 할 만큼 힘든 시기였어요.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더 겸손해지고 단단해졌다 할까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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