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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소설가 윤성희가 소설가 강영숙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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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소설가 윤성희가 소설가 강영숙에게

입력
2007.02.08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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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라면 어땠을까” 버릇처럼 생각하곤 해요

전 아직도 그 공중전화를 기억하고 있어요. 이화여대 후문을 지나는데 삐삐가 울렸어요. 번호를 보니 선배였어요. 헤어진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선배는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걸까요? 전날 저는 술이 과해서 집엘 가질 못했죠. 그래서 선배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졌었잖아요. 우리가 같이 술을 마셨던 술집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 나요. 명동 근처의 중국집이었죠. 성희야, 안주 먹어라. 안주. 선배는 내게 말했어요. 그러고는 내 쪽으로 비싼 안주를 밀어주었어요. 그 덕에 전 아주 술을 많이 마셨어요.

암튼, 다음날 저는 공중전화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죠. 전화기 저편에서 선배는 이렇게 말했어요. “성희야. 니가 떠나자마자 전화가 왔단다. 됐단다.” 그렇게 짧게 말하고 선배는 전화를 끊었어요. 그게 선배의 당선 소식이었죠. 갑자기 눈이 왔다거나, 가슴이 두근거렸다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선하게 보였다거나, 하지 않았죠. 아, 됐구나, 하고 혼자 중얼거려봤죠.

그리고 일 년 후, 저도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죠.(역시 공중전화였어요) “선배님. 저 됐어요.” 크리스마스 이틀 전이었어요. 역시, 갑자기 눈이 내리지 않았죠. 세상이 온통 내 것처럼 느껴지거나,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다짐을 하지도 않았죠. 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오들오들 떨었어요. 사방이 막혀 있었는데도 바람이 부는 것 같았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저는 일 년 전 선배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선배, 미안해요. 그 생각만으로도 저는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때 이후로 전 이렇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선배라면 어땠을까?’ 내가 가는 길이 안개처럼 보일 때, 똑같은 문장을 하루에 수십 번씩 반복해서 중얼거릴 때, 새벽녘 방 한구석에서 쪼그려 뛰기를 해도 머릿속이 개운하지 않을 때면 선배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곤 했죠. 그런 생각들이 오늘날 나를, 팔 년 전의 나보다,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이제는 선배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대입시키게 되었죠. 존경하는 많은 선생님들, 의지하는 많은 선후배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의 주인공들…. 그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들이라면 어떻게 견뎠을까?

제가 이십대일 때 선배는 삼십대였죠. 같은 삼십대가 되기 위해 얼른 달려왔더니 선배는 사십대가 되어 버렸네요. 가끔 선배는 제 작품에 대해, 압정 같은 말을, 한마디씩 던져주곤 했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전 태연한 척 했지만 실은 무엇인가를 들켜버린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들켜버린 게 그다지 기분 나쁘진 않았어요. 이 편지를 다 쓰면, 술 마시자고 전화할게요. “이년아, 넌 너를 너무 몰라.” 술 취한 선배의 목소리로 이런 욕을 듣고 싶거든요.

성희 / 2007년 2월

▲ 김다은의 우체통

우정에 취해 서로의 소설을 ‘모독하고 격려하고’

두 사람은, 졸업한 제자들을 위해 서울예대 박기동 교수가 만든 <소설 아카데미> 에서 만났고(소설가 하성란 씨도 이 모임 출신이라고), 고통의 습작시절을 같이 보냈다. 자주, 그들은 술자리를 갖는다.

윤성희 씨는 “소설가들끼리 만나면 소설 이야기는 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술 마시며 서로의 소설을 아낌없이 모독하고 격려한다”고 귀띔했다. 술이라는 단어를 듣자 문득 보들레르의 말이 떠올랐다. “때로 취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방법은 네 가지, 알코올, 마약, 사랑, 시(詩).” 우리를 취하게 하는 또 한 가지, 우정!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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