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장(동아제약 회장)이 3연임을 눈앞에 두고 ‘역전 만루홈런’을 맞았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전경련 부회장을 돌연 사퇴하는 방식으로 강 회장의 3연임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김 회장의 사퇴 배경과 관련, 개인적 차원의 돌출 행동인지, 아니면 전경련 회장단을 구성하는 다른 그룹 총수와의 교감에 의한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사퇴 배경은 강 회장의 3연임에 대한 불만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 회장은 이날 사퇴의 변으로 “부회장에 선임된 후 전경련의 조직혁신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뤄진 게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강 회장 체제가 재계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채 재계의 화합은커녕 오히려 개혁의 대상으로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 다른 그룹 총수와의 교감 여부에 대해서는 돌출 행동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모 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재계의 은둔자’로 불리며 외부 접촉을 삼갔는데, 2년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된 뒤 초기에는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다가 다시 1년 전부터 활동이 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때 총수가 강력한 차기 회장 후임으로 알려졌던 중견그룹의 관계자도 “우리 회장께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체면을 구기면서라도 강 회장 연임은 막아야 겠다’고 판단한 김 회장이 일종의 ‘옥쇄 작전’을 폈다는 해석이다.
김 회장이 초강수를 두는 바람에 전경련 회장 선임 문제는 총회(9일)를 불과 1주일 앞두고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엄청난 심적 부담을 지게 된 강 회장으로서는 회장직 연임을 고사(固辭)하기도, 그렇다고 수락하기도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전경련 주변에서는 강 회장이 일단 회장직 연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강 회장은 “총회 때까지는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다”고 말했는데, 이는 총회까지 ‘정면 돌파’ 해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회장 교체시 동반사퇴 가능성이 높은 조건호 상근부회장 등 사무국 임원들이 김 회장 사퇴 번복 작업에 적극 나서는 등 재빠르게 행동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강 회장의 퇴진이 불가피하는 의견이 많다. 모 그룹 관계자는 “재계의 신뢰회복을 위해선 새 회장 추대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차기회장으론 조석래 효성ㆍ김승연 한화ㆍ박삼구 금호아시아나ㆍ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거론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이후 전경련 회장이 김우중-김각중-강신호 회장으로 이어지면서 재계의 구심점이 급속히 와해되고, 전경련 위상도 추락했다”면서 “김준기 회장에 이어 다른 회장들의 부회장직 연쇄 사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 재계 "예상치 못한 일" 큰파장은 없을 듯
전경련 회원사인 주요 그룹들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급작스런 부회장직 사퇴에 대해 일제히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충격에 휩싸였다.
재계에서는 향후 전망과 관련,“전경련의 위상이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기위해선 강 회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큰 파장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지난달말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강 회장을 차기 회장에 재추대했던 것을 감안, 김 부회장의 사퇴 배경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신중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삼성 관계자는 ““회장단이 차기 회장 선출 방법과 절차에 대해 결정한데로 따른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SK그룹도 “전례 없는 일”이라면서도 말을 아꼈다. 그룹 관계자는 “전경련 내부에서 변화의 기류가 표출된 것은 회장단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인 만큼 새로 출범하는 회장단이 이를 잘 수용해 전경련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화, 효성 동양그룹 등은 그룹총수가 강 회장 퇴진시 차기회장으로 거론되는 것을 감안, 이번 사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선 강신호 현 회장이 차기 회장을 맡을 의향이 있는 총수들은 제쳐두고, 수락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건희 삼성 회장 등에게만 전경련을 이끌어 줄 것을 요청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경련 회장단은 강신호 회장과 이건희 회장, 김준기 회장 등 19명의 비상근 부회장과 조건호 상근 부회장 등 21명으로 이뤄져 있다. 정몽구 현대차, 구본무 LG, 최태원 SK, 이구택 포스코, 김승연 한화, 조양호 대한항공,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조석래 효성, 현재현 동양, 이웅열 코오롱, 최용권 삼환기업, 박영주 이건산업, 류진 풍산, 허영섭 녹십자 회장도 부회장단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