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내가 만약 개미라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내가 만약 개미라면…”

입력
2007.02.07 03:23
0 0

“이놈 찾았다.” 한 아이가 감자 잎줄기에 깊이 주둥이를 박고 있던 달팽이를 찾아냈다. “어쩌려구?” 나는 물었다. “갖고 놀려구요.” 우리의 시선 때문인지 달팽이는 꼼짝 않는다.

<(…) 이제 막 기울기 시작한 달은 차돌같이 차다/ 나의 길은 어느새 풀잎에 젖어 있다/ 손에 주전자를 들고 아침 이슬을 밟으며/ 내가 가야 할 길 앞에서 누가 오고 있다// 죄 없는 소년이다/ 소년이 무심코 나를 밟고 간다/ 아마 아침 이슬인 줄 알았나 보다>

정호승 시인의 <달팽이> 처럼, 사람의 무심한 횡포 앞에 선 존재를 그린 이야기책이 있다. 어느날 무심코 내려보게 된 발 밑, 바로 그 책 <신발 밑의 꼬마 개미> (필립 후스 글ㆍ데비 틸리 그림ㆍ문공사 발행)의 첫 장면이다.

“제발, 날 밟지 마. 부탁이야!” 한 점일 뿐인 개미가 아이를 높이높이 올려다보며 애원한다. “내게도 사랑스런 가족이 있어. 아기 개미들에겐 내가 필요하단다. 난 듬직한 아빠거든. 집도 짓고 먹을 것도 구해줘야 돼. 네 신발에 밟혀선 안된다구.”

개미의 필사적인 호소, 아이로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실’이었을 터이다. 아이는 개미의 존재를 부정해본다. “넌 너무 작아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내가 널 밟는다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겠어?” 약자일 뿐인 개미는 다시 애를 써본다. “내가 너고 네가 나처럼 쪼그만 개미라면… 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랄까?”

아이와 개미의 극적인 대화는 수직으로 길게 펼쳐진 그림으로 대비된다, 커다란 아이와 발 밑의 한 점 개미로. 그러나 뒷장을 넘기면 반대의 그림이 펼쳐진다. 커다란 개미와 개미 발 밑의 한 점 아이로.

‘네가 내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는 개미의 마지막 부탁에 과연 아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글로 결론을 말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높인다.

이제 아이들의 주변에서 ‘죽음’은 낯선 상황이 아니다. TV 등의 영상매체는 물론 컴퓨터 모니터 속의 시뮬레이션에서 죽음은 수없이 되풀이된다. 죽음의 상황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 심지어 즐기게 된다.

이 흔해빠진 죽음들 속에서 이 책은 ‘시시하게도’ 신발 밑에 막 밟히려는 개미의 생명 따위를 이야기한다. 책 속의 아이 말대로 ‘그게 뭐 대단한 일’이겠는가.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신발 밑의 꼬마 개미> 는 각각 다른 이름,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모두 소중한 생명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한편, 위협적인 자세로 나보다 약한 존재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혹여 내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안돼”가 익숙한 부모로, 무시의 눈초리를 한 어른으로, 또는 아이보다 우세한 생물학적 힘을 무기로….

어린이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관장 김소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