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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알렉산더의 연인·리스본 쟁탈전 '역사와 사랑은 섞어야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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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알렉산더의 연인·리스본 쟁탈전 '역사와 사랑은 섞어야 제 맛'

입력
2007.02.07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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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스타 작가가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걸출한 이야기를 길어올렸다. ‘파리의 태양’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출신 프랑스 작가 샨사(35)와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거장 주제 사라마구(85).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그들의 팩션 소설 두 편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 알렉산더의 연인

샨사 지음ㆍ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발행ㆍ300쪽ㆍ1만원

중국사를 젖줄 삼아 <천안문> , <바둑 두는 여자> , <측천무후> 같은 ‘명품 소설’을 만들어온 샨사가 이번엔 고대 마케도니아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그 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오롯한 서양은 아니다. 그 곳에선 동양과 서양이, 남성과 여성이, 빛과 어둠이, 불과 얼음이 몸을 섞는다.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한 데 뒤섞으며 찬란한 하이브리드(잡종)의 힘을 보여준 헬레니즘의 창시자,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계집애처럼 여리고 예쁜 소년 알렉산더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아버지 필립포스 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그리스의 모든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고도 채워지지 않는 번민. 그는 번민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페르시아 원정에 나서고, 그 곳에서 작가가 창조해낸 그의 연인, 아마조네스의 여왕 알레스트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위대했다고 일컬어지는 서양의 정복자와 금남(禁男)의 동양 여전사의 첫 만남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 듀얼리스트> 를 문자화해 놓은 듯 강렬하고도 아름답다. 서로를 동성으로 알고 몇 날 며칠에 걸쳐 벌이던 칼싸움은 이제 서로의 몸을 핥는 애무의 몸짓이 된다.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곧바로 파멸을 뜻하는 아마조네스는 존재의 근거였던 여자들만의 삶을 버리고 알렉산더의 아내가 된다. 그들이 함께한 정복의 긴 세월. 알렉산더는 이제 그녀와 함께 아마조네스의 초원으로 돌아가 죽음의 합일을 이룬다.

이 소설엔 ‘샨사적’이라는 신조어의 내용을 구성하는 특징들, 이를테면 탐미적이고 시적인 문체, 섹슈얼리티를 권력으로 갖는 인물들의 양성적인 매력과 자기 도취, 도저한 허무와 권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는 인간 내면의 다면성 등이 한껏 구현돼 있다. 그러나 전작을 통해 이미 샨사적 매력의 세례를 충분히 받은 바 있는 독자라면 기시감으로 충만한 자기 복제의 새 텍스트를 접하고,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실감케 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작가는 “알렉산더가 나를 선택했기에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 리스본 쟁탈전

주제 사라마구 지음ㆍ김승욱 옮김 / 해냄 발행ㆍ512쪽ㆍ1만3,000원

설정이 기발하다. 포르투갈은 711년 이래 무어족의 점령 하에 있다가 1147년 영국 십자군의 도움으로 포르투갈레의 통치자 아퐁소 엥리크시가 리스본을 점령하면서 생겨났다는 게 역사의 기록이다. 그런데 한 교정자가 원고 교정 중 자명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장에 부정을 뜻하는 단어 ‘not’을 슬쩍 끼워넣는다. 역사라는 것 역시 사실들을 취사 선택해 배열, 정리한다는 점에선 픽션이니까!

해고를 각오하고 잔뜩 움츠린 라이문두 실바는 그러나 편집자인 마리아 사라 박사로부터 대안 역사를 써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이제 역사적 사실은 “십자군이 12세기에 포르투갈의 국왕 아퐁소가 무어족에게서 리스본을 탈환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이문두는 왜 십자군이 아퐁소 국왕의 요청을 거절했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역사의 빈 틈 속에서 개발해야 한다.

재구성된 12세기의 역사와 라이문두와 마리아의 사랑이 자유자재로 교직되는 이 해박한 소설은 역사와 언어에 본질에 대해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짓궂게 묻는다. 그런데, ‘하나의 역사’라는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라마구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너머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의문.

왜 하필이면 포르투갈의 독립사일까? 외부의 도움으로 독립했다는 게 심기에 영 거슬렸던 걸까?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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