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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가족, 행복사회-이제는 가족입니다] 주부들의 조용한 혁명, 과천품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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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가족, 행복사회-이제는 가족입니다] 주부들의 조용한 혁명, 과천품앗이

입력
2007.02.0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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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두 자녀를 키우는 전업주부 문경희(35)씨. 첫째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바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집에 들어앉은 지난 5년 동안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과천으로 이사를 오면서 정 나눌 이웃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한마디로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문씨는 작년부터 ‘과천 품앗이’를 통해 이웃들에게 손 솜씨를 활용한 가구 재활용과 머리핀, 헤어밴드 만들기 등을 가르쳐주면서 활력을 되찾았다. 품앗이 활동으로 자기계발은 물론 이웃간의 친목도 다지게 됐기 때문이다. 문씨는 “나도 몰랐던 잠재능력을 알게 됐다”며 “이웃에게 무엇이든지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에 활력이 저절로 생긴다”고 말했다.

#2.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권영실씨는 4년 전부터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과천품앗이에서 이웃에게 내놓은 음식이 예상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데다, ‘가게를 내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힘입어 용기를 낸 결과다. 그는 품앗이 회원들에겐 반찬 값의 30%가량을 현금이 아닌 회원들끼리 통용되는 지역화폐로 받는다.

대신 다른 이웃이 품으로 내놓은 호도파이, 천연비누, 자녀들의 수학, 과학 교육 품을 사는 것으로 지역화폐를 소비한다. 권씨는 “지역 주민들과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다”며 “품앗이 활동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생기는 건 덤”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는 두레, 품앗이 등 지역주민끼리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 전통이 풍부했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친인척보다 더욱 돈독한 정을 쌓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 없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는 옆집 조차 알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 집안 일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가족구성원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활용한다. 어린이집, 사교육기관, 노인요양원, 반찬가게 등이 성업중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도시 생활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지역공동체가 바로 ‘과천품앗이’다. 관악산 자락아래 자리잡은 과천 주민 150여명이 참가하고 있는 이 공동체는 일종의 지역화폐운동. 주민들은 공동체내에서만 통용되는 화폐인 ‘아리’를 통해 이웃과 ‘품’을 주고 받는다. 품은 대개 1시간당 1만 아리로 환산돼 거래된다. 품의 종류는 육아, 음식마련, 자녀교육, 이미용, 차량정비, 다도, 심리치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나눌 수 있는 품이 많다 보니 공동체 회원들은 가정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육아와 교육, 가사노동을 이웃과의 교류를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쉽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재작년부터는 5개 가정이 뜻을 모아 공동육아도 시도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가정이 당번을 정해 하루씩 5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방식이다. 공동육아로 생기는 4일의 여유시간은 자기계발이나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로 활용이 가능하다.

개인끼리만 품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권영실 씨가 운영하는 반찬가게처럼 회원이 운영하는 사업체도 품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품을 나누는 가맹점은 권 씨의 반찬가게와 그림으로 어린이의 심리상태를 알아내고 치료하는 예술심리교육연구소이다.

최은정(37) 심리교육연구소 소장은 “아직은 개인이 아닌 가맹점을 중심으로 한 품앗이 활동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가맹점은 품앗이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원들간의 합의만 이뤄진다면 늘려나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과천품앗이의 특징은 회원 대다수가 육아 등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 둔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여성의 전형적인 생애주기를 ‘직장생활-출산과 육아로 인한 전업 주부화- 재취업- 퇴직후 생활’이라는 M자 곡선으로 표현하는 걸 감안하면 대다수가 삶의 하강지점에 위치한 셈이다. 한없이 밀려드는 육아와 가사노동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품앗이 활동은 그런 여성들에게 성취감 뿐만 아니라 재취업이나 창업을 위한 교두보까지 마련해 주고 있다. 과천품앗이 김명자(51ㆍ여) 운영위원장은 “지역특성상 대다수의 회원들이 전문지식은 있는데 육아 등으로 인해 가정에 매어있는 경우가 많다”며 “품앗이 활동은 유휴 인력을 지역사회를 위해 활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풍선아트 강사로 활동중인 김윤경(40)씨는 과천품앗이 활동을 계기로 재취업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5년 전 까지 자녀 셋을 둔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품앗이를 통해 풍선아트를 접한 뒤, 꾸준한 노력 끝에 풍선아트 강사로 변모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하다 보니 기술이 늘었다”며 “활기차게 생활하는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도 대만족”이라고 귀띔했다.

과천 품앗이의 활동이 회원간의 품 교환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작년에는 자원봉사기금을 지원 받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래놀이를 교육시키는 등 문화자원을 공동체 전반에 확산시키는 봉사도 했다.

게다가 공해가 적은 천연화장품, 면 생리대 만들기, 자기 컵 갖기 운동 등 자연친화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폐기처분과정에서 분해가 잘 되지 않는 양파망을 시장바구니, 음식물쓰레기 거름망 등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을 회원을 중심으로 벌이고 있다.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운영진이 매년 바뀌다 보니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작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아예 품앗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김 위원장은 “민간기관에서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이 도입돼야 한다”며 “또한 지역사회끼리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형영기자 prometheus@hk.co.kr

■ 과천자원봉사센터 가족봉사단

과천시 별양동어린이집 옆 향촌굴다리를 지나다 보면 꽃과 바다, 숲이 가득한 커다란 벽화를 만난다. 진회색의 콘크리트 벽을 화려하게 바꿔놓은 사람들이 바로 가족봉사단이다. 벽화는 과천 자원봉사센터에서 2005년께 모집한 가족봉사단 80여명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만든 노작(勞作)이다.

과천자원봉사센터는 2001년 자원봉사를 점수 따기 수단으로만 여기는 청소년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가족봉사단을 발족했다. 당시로서는 봉사활동에 온 가족을 끌어들인다는 생각자체가 새로웠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하는 봉사활동은 공동체에 기여할 뿐 아니라, 각각 가정의 화목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게 이 봉사단의 착안점이다. 안승화(여) 자원봉사센터 소장은 “과천은 지역특성상 남의 도움 없이도 필요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계층이 대부분”이라며 “때문에 주민을 봉사에 동참토록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우선 청소년들이 부모와 부대끼다 보니 세대간 소통의 장이 마련됐다. 봉사활동의 내실화가 이뤄진 건 물론이다.

게다가 참가 가족끼리 활발한 교류를 통해 친인척과 다름없는 이웃사촌이 됐다. 안 소장은 “학교에서도 봉사에 참여했던 학생들끼리 왕래가 잦다 보니 ‘집단 따돌림’은 딴 나라 얘기가 됐다”며 “부모가 외출한 사이 아이가 아플 때는 다른 자원봉사 가족이 보살필 정도로 정이 돈독해 졌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센터는 매년 2월께 20~30개 가정을 모집한 뒤 1년 동안 장애체험, 벽화 그리기, 농산물 수확, 사랑의 집짓기, 불우이웃을 위한 김장 담그기 등의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참여가정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들에게 맞는 자원봉사활동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참여 가정이 자원봉사센터 도움 없이 자율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해마다 자원봉사단이 생겨나 현재는 6개의 봉사단이 활동하고 있다.

활동도 양로원 봉사를 비롯해 산과 하천 쓰레기 줍기, 독거노인 돕기 등 다양하다. 나누리 봉사단은 1주일에 한번씩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해 방 청소를 하거나 밑반찬을 제공한다. 또 10여가정의 아이들이 자신의 용돈을 모아 한 달에 한번씩 독거 노인들에게 용돈을 드리기도 한다. 개울사랑은 하천을, 다사랑은 과천 주변 산의 정화를 책임지고 있다.

나누리봉사단 이성자(45ㆍ여) 팀장은 “처음에는 중학생 아들의 봉사점수 때문에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베푸는 기쁨에 매료됐다”며 “가족봉사단은 지역사회 공헌은 물론 가정 화목, 지역주민과의 친목 도모 등 일석 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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