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5일 '매년 7% 이상의 성장'을 골자로 한 경제 구상을 발표했다. 측근들은 이를 '근혜노믹스(근혜+nomics)'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6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외교안보 정책 구상을 공개했다. 이 전 시장 측도 보도자료에서 "'MB독트린' 을 천명했다"고 홍보했다.
'노믹스'는 1980년대에 과감한 감세정책 등으로 미국 경제의 체질을 바꾼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레이거노믹스 (Reaganomics)'라고 부른 데서 비롯됐다.
독트린(doctrine) 역시 '국제 사회에서 한 나라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정책상의 원칙'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다. 외교상의 불간섭주의를 표방한 '먼로독트린', 냉전주의를 공식화한 '트루만 독트린' 등이 좋은 예다.
그러나 두 용어는 모두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통령의 경제ㆍ외교 노선을 지칭할 때 사용됐다. '클린턴노믹스' 등의 표현도 쓰기는 하지만 레이거노믹스처럼 일반적이지 않다.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는 '자화자찬식'으로 당사자들이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학계에서 의미를 저울질해 붙여 준다. 현재 미국의 유력대권 주자인 힐러리 상원의원도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경제정책 제언을 담은 '아메리칸 드림 이니셔티브'를 오래 전에 발표했지만 아직 누구도 이를 '힐러리노믹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나라당 주자들은 나름의 정책구상을 벌써 '대통령급'으로 포장하고 싶었을까. "하나의 의미지가 선택되면 과정 전체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는 기호학자들의 지적처럼 언어의 인플레이션은 자칫 국민의 시야를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부 이태희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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