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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귀로 쓰는 시인 조 정 첫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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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귀로 쓰는 시인 조 정 첫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입력
2007.02.07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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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죽음에 억눌려 탄식하고조 정 지음 / 실천문학사 발행ㆍ152쪽ㆍ7,000원

“님이여 건너지 마라// 시끄러운 꿈 한 켤레 건지며/ 밤새/ 신기료장수처럼 우는/ 귀// 강은/ 귓속으로 흘러든다// 흰 머리카락 오천 丈 엉킨/ 목젖이 아,/ 흐, 백 촉 더 붓도록 부르지 못해// 산발한 버들가지 들어 물낯을 친다/ 오라/ 오라.”(<버들 귀> )

물론 시인은 손으로 시를 쓴다. 그러나 어떤 시인은 눈으로 시를 쓰고, 또 어떤 시인은 발로 시를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인은, 귀로 시를 쓴다고 말할 수 있다.

2000년 한국일보로 등단한 조 정 시인이 첫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을 냈다. 사방 것들의 울음과 사연을 듣는 커다란 귀를 가진 이 시인은 귀로 읽어낸 그들의 고통을 몸으로 옮겨 적는다. 이승에 귀를 기울이며 분화구를 채운 억새에서 죽은 자들의 부름을 듣는가 하면( <용눈이 오름> ), 잠 속에서 “숲 속 깊은 데 누웠던/ 아이가 땅을 열고 나오는 소리”( <알을 배는 소리들> )를 감지하기도 한다. “지나가던 혼백이 내 베개 베는 소리”( <불면> )를 들으며 불면에 시달릴 때도 있다.

현실과 깊이 밀착돼 있는 그의 감성은 <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 , <겨울 모슬포에 머물다> 처럼 여행과 풍경을 소재로 한 시들에서도 일관된다. “내가 한쪽 신 벗고 돌아올 때 해안 절벽에서 몸을 날려 죽는 자가 있었다/ 한 몸 받아 들고/ 바다도 꽤 심정이 어지러운지/ 내일은 관처럼 깊은 안색을 보러 가기로 했다/ 마주 보며 남몰래 웃어도 그나 나나/ 뒤꿈치가 좀 아플 것이다”( <뒤꿈치가 깨진> ) 같은 구절을 보자. 감정의 분출을 자제하면서도 한 방울의 누수 없이 전해야 할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전하는 화술이 뛰어나다.

“삶이 나를/ 이발소 그림처럼 지루하게 여기는 눈치였다”(<이발소 그림처럼> )고 탄식하는 시인이지만, 그 지루함 속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것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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