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피고인, 4가지 공소사실 모두 유죄.”?“그러나 비자금 조성 불가피성 등 정상참작 요소 인정된다.”?“다만, 경영 선진화 위해 엄정한 책임 묻지 않을 수 없다.”?“다른 피고인들은 한국경제에 기여한 점 감안해 집행유예에 처한다.”?“정 피고인을… .”
5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의 정몽구(69)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임직원들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법정은 숨이 멎은 듯 했다. 형사합의25부 김동오 부장판사가 30분간 판결요지를 읽어 내려갔다. 한 구절 한 구절 판결문이 낭독될 때마다 방청석은 집행유예나, 실형이냐를 놓고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다.
마지막에 나온 주문(主文: 판결 선고)은 “정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였다. 순간 방청석에선 짧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이어 김 부장판사가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이미 허가된 보석 결정은 취소하지 않는다”고 하자 현대 관계자들은 마지막 반전에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정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일어섰고 묵묵히 담당검사, 변호사들과 악수를 한 뒤 빠르게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재벌의 관행적 비리 등 기업범죄에 대한 엄단 의지를 어느 때보다 강조했다. 판결요지에선 “정 회장이 피해변제를 위해 현금과 주식 706억원 상당을 내놨다”, “횡령한 900억여원 중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것은 20억~30억원에 그쳤다”, “2003년 이후 비자금 조성을 현저히 줄여왔다”는 등 정상참작 요소를 많이 지적했다. 그러나 결국 “구태의 잘못된 경영관행은 청산돼야 한다”며 실형을 선택했다.
특히 정 회장과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동진(57) 부회장 등 3명의 임원에겐 “의사결정을 할 만한 지위에 있지 않았다”며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기업범죄의 최종 책임이 총수에 있으며 실무를 담당한 임원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을 하지 않은 것은 재계 서열 2위인 기업총수 구속에 따른 경제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일부에선 “결국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될 것이기에 1심에서 무리하게 구속하지 않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경우처럼 1심 실형을 선고받은 기업인들에게 2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징역 3년이 비록 실형이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가 가능하기 때문에 항소심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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