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정기총회를 앞두고 분란에 휘말리고 있는 모습은 보기 딱하다. 재벌그룹 회장이 내부 운영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며 부회장직을 던져 버린 일은 반세기에 가까운 전경련 역사에 유례가 없다. 그만큼 전경련이 심각한 내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증거이기에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1차적 원인은 강신호 회장의 무리한 3연임 시도라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 김준기 동부그룹회장의 부회장직 사의 표명이 차기 회장을 결정하는 9일 총회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이를 암시한다.
김 회장은 “부회장에 선임된 후 전경련의 조직 혁신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뤄진 게 없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강 회장은 지난해부터 집안 문제와 아들과의 경영권 다툼이 외부에 공개되면서 재계 내부에서조차 자격시비에 시달려왔다.
그럼에도 강 회장은 아들과의 화해장면을 연출하는 등 연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왔고, 이에 대한 반발이 부회장직 사퇴를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강 회장의 연임은 현실적으로나, 명분에서 가당치 않은 일이다. 재계의 화합과 신뢰회복을 위해 강 회장이 자기 희생의 결단을 내려야 마땅하다고 본다.
이번 사태의 근본 배경은 전경련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정부에 맞서 재계 의견을 대변하지도 못하고, 내부에서는 특정 회원사의 입장만 대변한다는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4대그룹 회장 등 오너들이 회장직을 기피하면서 재계 수장으로서 회장의 위상도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따라서 재계 내부에서는 힘있는 오너 회장이 전면에 나서 과거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회장문제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 변화와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부 재벌의 대변인 역할에 그치는 구시대적 정체성에 더 무거운 책임이 있다. 차제에 재계 전체의 건전한 의견과 이해를 대변하는 진정한 재계의 구심점으로 거듭나기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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