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비를 보장할 필요가 있는 재화를 흔히 가치재(價値財)라고 부른다. 주거서비스는 대표적인 가치재 중의 하나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서비스는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가 주택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위가 정당화되는 이유는 이처럼 주거서비스가 가치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개입에는 한도가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주거서비스를 공급해주면 좋기야 하겠지만,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재정 적자이다. 정부가 도깨비 방망이라도 갖고 있다면 재정 적자가 문제될게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그 적자는 고스란히 우리 세대나 우리 후세대가 부담하게 된다.
설령 정부가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정부의 시장개입에는 한도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직접 재화를 공급하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는 소비자들이 어떤 주택을 원하는지 일일이 알 수가 없다.
또한 정부는 치열한 시장경쟁을 통해 품질을 개선하고 원가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유인체계가 없다. 물건이 안 팔려도 정부가 망할 일은 없고, 원가가 높아도 정부가 손해 볼 일은 없다.
많은 주택 전문가들이 정부의 시장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장개입에 한도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1ㆍ31 대책을 보고 있노라면, 정부가 시장개입의 한도를 한참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ㆍ31 대책의 큰 방향은 맞았다. 부동산 정책의 중점을 서민의 주거복지 안정으로 전환하겠다고 하였고, 늦은 감이 있지만 공급을 중시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은 현 주택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세부 실행계획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득 1~2분위의 주거수준 취약계층에 정부 역량을 집중해도 부족할 판에 소득 5~7분위의 계층에까지 정부가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장 나오는 이야기가 그 많은 재정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임대주택펀드를 조성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임대료와 주택매각자금으로 펀드의 원금과 수익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지원의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한다.
정부의 셈법을 알 수가 없어 가타부타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언뜻 보더라도 임대료로는 적정 수익률을 제공할 수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재정지원은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임대료 수입으로 관리비를 감당하기도 버거운 실정이고, 빠른 슬럼화로 건물 가치가 주변지역 유사건물보다 낮은 것까지 감안하면 정부의 셈법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재정 부담은 그렇다 치고, 사실 1ㆍ31 대책의 가장 큰 문제는 비효율적인 공공이 민간부문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주택이든 아니든 양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부 규제로 나타나는 민간부문의 주택공급 부족 문제를 주택공사의 공급 증대로 해결하겠다는 발생은 이런 사고의 일환을 보여준다. 이런 사고는 주택시장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이게 무지가 아니라면, '정부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그들이 원하는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착각과 함께 만용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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