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경주 현대호텔의 한 객실에서는 라벨의 <라 발스(왈츠) 연주가 울려퍼졌다. 보문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에서 임호열(22ㆍ하노버 음대)씨가 연주를 끝내자 더블린 국제 콩쿠르의 공동 설립자이자 심사위원장인 존 오코너(아일랜드)가 다가서더니 독일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질문을 쏟아냈다.< p>라>
“왈츠가 뭐죠?” “춤이요.” “춤을 춰본 적 있나요?” 임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코너는 “당신의 연주는 인상적이지만 춤의 느낌이 부족하다”며 직접 왈츠를 춰보인다. “라벨이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성장했죠? 그의 삶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머뭇거리는 임씨. “한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작곡가의 사상, 취향 등 모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 다시 시작하죠.”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고, 때로는 연필을 입에 문 채 시범을 보이는 교수의 셔츠는 땀으로 흥건히 젖어들었고,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학생의 얼굴은 붉게 상기됐다. 레슨 시간은 정해진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교육자 6명이 한국의 피아노 유망주 20명을 지도하는 ‘예술의전당 음악캠프’ 현장이다. 17개의 호텔 객실이 레슨실과 연습실로 꾸며졌고, 한 홀에서는 공개 마스터클래스가 열리고 있다.
1월 31일부터 열흘간 열리는 이 캠프를 위해 오코너를 비롯해 루빈슈타인 콩쿠르 심사위원장 아리 바르디(이스라엘), 2005년 쇼팽 콩쿠르 부위원장 피오트르 팔레치니(폴란드), 지난해 리즈 콩쿠르 심사위원 자크 루비에(프랑스), 2002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장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러시아) 등 세계 피아노 음악계의 거물 5명이 한꺼번에 내한했다.
여기에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던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충모 교수가 가세했다. 이들 중 5명이 임동민, 동혁 형제가 공동 3위를 했던 2005년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이었고, 2명은 지난해 김선욱이 우승할 때 리즈 콩쿠르에서 심사를 맡았다.
첫 레슨을 마친 이들은 한국 연주자들의 가능성과 재능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머지 않은 미래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세계 음악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팔레치니는 “15년 전에 앞으로 폴란드 피아니스트들이 아시아에 가서 공부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했더니 다들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리즈 콩쿠르에서 한국인 2명이 6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했는데, 내 의견대로라면 4명이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에는 이번 캠프 참가자인 정재원(27)씨가 리즈 콩쿠르에서 연주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를 놓고 “평생 그 곡을 가르치고 연주했지만 최고라고 느낀 것은 40년 전 샹송 프랑수아의 연주 이후 처음이었다”고 극찬했다. 바르디는 좋은 교육 방식, 뛰어난 두뇌, 높은 성취 동기, 민족성 등을 한국 연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원인으로 꼽은 뒤 “음악의 미래는 아시아에 있음을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밤의>
조기 유학에 대한 충고도 나왔다. 오코너는 “유럽에서도 자신에게 맞는 훌륭한 스승을 찾기란 쉽지 않고, 더군다나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가족과 헤어지는 것은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김선욱, 김태형 등 한국에서 교육 받은 학생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은 “유망주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최고 수준의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매년 이 캠프를 열 계획이며 분야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주=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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