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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족에 대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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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족에 대한 의무

입력
2007.02.07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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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학회 참석차 미국의 어느 대학에 갔었다.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 여비 챙겨주려고 그랬는지 다른 참석자들보다 이틀을 일찍 오게 하여 때마침 이슈가 되었던 북핵에 대한 강연을 내게 부탁했다.

● 놀토마다 열리는 학회는 고역

강연이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 나를 초청한 교수는 자기는 집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서 조교로 하여금 내게 식사를 대접하게 했다. 이유인즉슨 앞으로 여러 날 동안 있을 학회를 호스트하느라 한동안 집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날은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패밀리 듀티(가족에 대한 의무)라나.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어 그들의 관습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귀국한 지가 십년 가까이 되는 동안 우리의 관습에 완전히 동화되었던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져 일순간 당황했으니깐 말이다.

사실 귀국 직후에 가장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 중 하나가 토요일에 학회 참석하는 것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강사로, 돈벌이로 정신없이 쫓겨 다니다가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보내고 싶은 것이 나와 가족의 심정이었지만, 누구도 이를 헤아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학회는 여러 곳이었으니 주말에 가족과 함께 하기는 쉽지 않았다. 학회가 끝나면 저녁식사에 이어 2차가 필수이니 12시 넘어 집에 들어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어쩌다 용기를 내어, 학회를 금요일 밤에 하면 어떠냐고 말을 꺼냈다가 완전히 바보 취급을 당했다. 금요일 저녁에 학회가 열릴 경우 멀리 있는 분들의 참석이 어렵다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라는 말은 결코 수용될 수 없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학회 후 밥만 먹고 2차는 안가고 도망치는 사람으로 찍혔던 내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2차로 끌고 가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임원이 되고 나서이다. 학회와 식사와 술자리로 이어지는 학회 문화의 전달자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런저런 일로 무척 바빴던 지난 가을에는 몇 주 동안 집에서 저녁을 먹지 못하다가, 어느 날 저녁 때 집으로 전화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나 집에 들어가 저녁 먹어도 돼?"라고 말이다. 아이고….

● 생소한 '패밀리 듀티'라는 말

오래 전에 보았던 4컷 만화에서, 놀아달라는 아이들에게 시간이 없다던 부모가 나이 들어 은퇴를 한 뒤 아이들에게 이제는 함께 놀 수 있다고 하자, 그 아이들은 부모에게 말한다. "요샌 바빠서 아빠, 엄마와 함께 놀 수 없어요"라고.

요새는 주5일제가 확산되어 가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놀토'라는 것도 있다. 이런 날에 학회 가려고 낮에 집을 나서기란 정말 고역이다. 그래도 아직은 놀토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학회에 빠질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학회를 금요일로 옮길 권력도 없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좀 더 확실히 찍히면, 가끔씩 도망치거나 빠져도 아예 열외 취급해 주겠지?

김선욱ㆍ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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