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됐어! 희망벨 더 울렸으면…”
"또 떨어졌다 네요." 2일 서울 여의도 하나증권 빌딩 5층에 자리잡은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 센터 김수경(35) 전문위원은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40대 중반의 상담 고객이 불합격 소식을 알리는 전화다.
그는 "경력으로나 인성으로나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분인데 10번째 계속 안 좋은 소식만 듣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2005년 12월 재취업지원센터가 문을 열 때부터 이 곳에서 일해 왔다.
그는 취업 컨설턴트다. 취업 컨설턴트는 따로 자격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5~7년 직장 경력을 쌓은 뒤 취업정보 업체에 입사해 관련 교육을 받고 경험을 쌓으면 된다. 그는 센터에서 일대일 심층 상담을 통해 구직자의 적성과 경력 등을 분석하고 적합한 구인업체를 연결해 준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기에 대한 노하우도 가르쳐준다. 조기 퇴직자들과 가장 가까이 접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새 길을 찾아주는 ‘희망 컨설턴트’다.
재취업센터는 지난해 4,201명을 상담해 1,979명에게 새 일자리를 찾아줬다. 40대는 905명중 376명, 50대는 316명 중 104명이 취직을 했다. 센터의 예산은 노동부의 고용보험기금에서 나온다.
운영은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동으로 맡는다. 센터 이용은 모두 무료다. 1년 이상 취업 경력이 있는 실업자는 누구든 상담과 구직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센터 홈페이지(www.newjob.go.kr)의 전직(轉職)지원서비스에 신청하면 된다.
김 위원은 “지난해엔 500여명을 상담했는데 그 중 절반 정도가 취업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절반 정도에게 직장을 찾아줬다”고 해도 될 텐데 ‘취업 실패’를 강조한다. 그는 “잘 돼야 하는데 너무 아쉬워서 그렇다. 일자리는 늘 부족하지만 40,50대를 위한 일자리는 더 없다”고 설명했다.
센터에 등록한 구직자는 3개월 심층 코스를 밟으며 일자리 찾기에 나선다. 프로그램은 구직자 성격과 직업 가치관 등을 분석하는 자기진단, 직무분석, 이력서 쓰기 강의, 연봉협상 전략, 기업분석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재취업과 관련한 새로운 강의도 들을 수 있다.
김 위원은 하루 평균 5명과 상담한다. 1명 당 30분~1시간 정도 걸린다. 그는 “경력이 화려하거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보다 적극적인 구직자와 상담하기가 편하다”고 했다. 적극적이면 추천하는 취업 전략이나 방법을 빨리 소화하고 곧바로 실천에 옮겨 취업 성공률도 높다고 했다.
정년을 다 못 채운 조기 퇴직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재취업에 대한 정보 부족이다. 주위에 어떤 재취업 지원 기관이 운영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회사를 나와 인터넷에서 재취업 정보를 찾거나 평소 알고 지내는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고작이다.
김 위원은 “회사에 다니면서 미리 퇴직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게 성공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한다. 퇴사 후 부랴부랴 새 직업을 찾으면 이미 늦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나마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우리 센터를 알게 돼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행”이라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회사 다닐 때 미리 퇴직 후를 준비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과 노조도 많이 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재취업에 대한 관심도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센터에는 인터넷과 신문 등을 볼 수 있는 50여개의 부스가 있다. 구직자들이 서로의 고민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이다. 김 위원은 “구직자가 일자리를 찾아 나서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가는 건 소속감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런 점에서 우리 센터같이 매일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오전 두 번째 상담을 마치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김 위원의 얼굴이 밝아진다. 지난 연말 금융업체 팀장으로 간 고객의 전화다. 자기 팀에 사람이 필요한데 쓸만한 인재를 추천해 달라고 했단다. 그는 “몇 달 전만 해도 일자리가 없어 잔뜩 풀이 죽어 있던 분인데, 이제는 어엿한 구인자가 됐다. 이럴 땐 정말 가슴이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 국가자격증, 퇴근 후에도 딴다
제2인생을 꿈꾸며 국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낮에만 실시하던 자격증 시험을 올해부터 밤에도 시행하기로 했다.
평일 낮에 시험을 보기 어려운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조치다. 자격증 시험이 밤에 치러지는 것은 1976년 국가 자격검정 시험제도가 시행된 이후 31년 만이다.
4일 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과 이 달 1일 이틀간 전국 12곳에서 저녁 6시와 8시에 치러진 정보처리, 미용사, 조리사 등의 자격증 시험에 모두 5,333명이 응시했다. 공단은 전체 응시자 중 직장인은 약 60% 정도인 것으로 추정했다.
높은 응시율 만큼 야간시험 시행에 대한 직장인들의 호응도 높았다. 경기 동두천시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는 윤명환(30)씨는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시험을 봤다.
그는 “요즘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버티기를 바라는 순진한 사람은 없다”며 “직장 옮길 때에 대비해 자격증 준비를 했는데 올 해부터 야간에도 시험을 볼 수 있게 돼 월차나 휴가를 낼 필요가 없어 정말 편했다”고 말했다.
한식조리사 시험을 본 김동철(39)씨는 “현재 다니는 회사 특성상 일요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는데 마침 야간 시험제도가 생겨 한시름 놓았다”며 “조리 관련 자격증을 많이 따 3년 내에 창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단의 홍석운 검정국장은 “야간시험 도입은 30여년 만에 이뤄지는 국가자격시험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 사업 중 하나”라며 “현재는 정보처리 기능사, 제빵 기능사 등 9개 분야에만 야간시험을 실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자체 상설시험장이 확충되면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 재취업센터 ‘맞춤형 프로그램’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 구직 프로그램의 목표는 맞춤형 재취업이다.
센터는 단순히 경력과 학력만으로 구직자를 평가하지 않는다. 직업흥미와 성격, 직업가치관 검사 등 다양한 자기 진단법을 활용해 구직자의 인성에서부터 적합한 직무 등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쌓아온 경력을 활용하는 쪽으로 취업 문을 두드릴지, 새로운 업종 쪽으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할지 결정한다.
이 곳에서 쓰는 이력서는 천편일률적인 일반 이력서와 차원이 다르다. 이른바 파워 이력서는 경력과 학력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구직자의 장점과 비전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지원 업체에 따라 이력서 양식이 모두 다르다.
담당 취업 컨설턴트의 꼼꼼한 검토가 끝나야 비로소 업체에 제출할 수 있다. 그만큼 쓰기도 어렵다. 센터 김수경 위원은 “이력서를 취업 컨설턴트의 보완을 거쳐 업체에 내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면접준비도 깐깐하게 진행된다. 컨설턴트가 면접관을 맡아 진행하는 모의 면접 장면을 모두 동영상으로 담아 말투, 표정, 답변 내용 등에 대해 평가해준다. 또 항공사 직원 출신의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복장, 행동, 표정 등의 이미지를 진단해 준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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