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월포위츠 세계은행 총재의 구멍 난 양말이 세계적 웃음거리가 됐다. 터키 이슬람사원을 참배한 뒤 벗어둔 신발을 다시 신으려는 월포위츠의 양말 양쪽 엄지발가락 부분이 나란히 구멍 뚫려 유난히 큰 발톱이 드러난 모습은 국내에도 소개됐다. 국제언론은 여기에 시니컬한 논평기사를 곁들였고, 독자들도 비아냥대는 댓글을 쏟아냈다.
세계 각국에 4,000억 달러를 꿔주거나 지원한 세계은행 수장이 창피를 당한 것이 딱하기는커녕 즐겁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세계은행과 월포위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인식을 엿보게 한다.
■ 터키 신문은 "전주(錢主) 양말에 구멍"이라고 비꼬았다. 재정적자가 심각한 터키는 세계은행에 185억 달러나 빚을 졌다. 월포위츠의 방문도 민영화 등 구조개혁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외환위기 때 겪었듯 아니꼬운 빚쟁이를 맘껏 비웃어줄 기회를 만난 것이다.
터키 언론은 월포위츠가 사원 참배 뒤 전통시장에서 150달러짜리 은팔찌를 딸 선물로 골랐다가 돈이 모자라 경호원에게 빌린 것까지 거론, 원래 인색한 면모를 드러낸 것처럼 흉봤다. 월포위츠는 유대계다.
■ 점잖은 영국 BBC방송도 총재 연봉이 40만 달러라는 점을 앞세워 흉보기에 가세했다. 세계은행이 빈곤구제를 표방한 것에 빗대 "세계를 빈곤에서 구하는 데 헌신하는지 모르나, 새 양말 살 형편은 못 되는 모양"이라고 빈정댔다.
후진국 지원을 내세우는 세계은행이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더 충실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적 인식을 일깨운 셈이다. 이걸 의식한 때문인지 워싱턴 포스트는 "양말 값 3달러를 아끼는 사람의 재정 자문을 받겠느냐"고 혀를 찼다.
■ 기실 새 양말도 구두 안쪽에 흠이 있거나 발톱이 길면 쉽게 구멍이 날 수 있다. 고급 양말일수록 그렇다. 월포위츠는 터키에 앞서 파리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인물이다.
특히 서구인들은 좀체 신발을 벗지 않아 양말이 탈난 것을 제때 발견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 이런 사정을 국제언론이 모른체 한 것은 국방차관을 지낸 월포위츠가 일방주의 안보전략을 수립한 '네오콘 전도사'였던 때문이다.
그의 변신을 강경보수의 발톱을 감춘 위장취업으로 의심하던 차에 실제 위협적인 엄지발톱을 드러냈으니, 절묘한 상징적 에피소드가 된 것이다. 그나 저나 월포위츠는 발톱 깎는 데 좀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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