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구의 쓰레기가 마구 버려지고 있는데 소각장에서 불과 몇 걸음 옆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무방비 상태에서 등교 시킬 수 있겠습니까.”“그래도 아이들을 볼모로 이런 일을 이슈화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초등학교 개학을 하루 앞둔 1월31일 오후 10시30분. 서울 양천구 자원회수시설(소각장) 근처 한 아파트에 초등학교 학부모 100여명이 모였다. 1시간여 격론 끝에 3명이 기권하고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등교 거부를 결정했다.
인접한 강서구와 영등포구 쓰레기의 소각장 반입 중단을 요구하며 한달 째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양천구 목동 일부 아파트 주민들이 1일부터 목원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의 등교를 거부,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2일에는 등교 거부에 동참하는 학부모들이 더욱 늘어나 전교생 792명 중 350명이 결석했다. 학부모들은 주민 설득 등 사전작업 없이 다른 구의 쓰레기를 들여온 서울시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6학년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는 유모(53)씨는 “분리수거도 제대로 되지 않은 다른 구의 쓰레기를 들여오는 것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을 누릴 양천구 주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비폭력적 방법으로 우리 주장을 알리기 위해 등교 거부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박범이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장도 “소각장 처리량을 마음대로 늘리려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항해 교육환경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참교육을>
하지만 어른들 싸움에 아이들을 내세우는 것은 또 다른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 최근 혐오ㆍ위험시설 건설, 학교 배정 갈등, 학내 비리 등 어른들 다툼에 학생들의 학습권을 볼모를 삼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작년 9월 경남 거제시 일부 주민들은 도금공장 사업승인 문제를 둘러싸고 초등학교 자녀들의 등교를 거부했고, 12월 서천군 주민들도 장항산업단지 조기착공을 요구하며 자녀들의 등교를 막았다.
8월 부산에서는 인문고 진학률 확대를 요구하는 한 중학교 학부모들이 교문을 가로막기도 했다.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경주 이전 과정에서도 등교 거부가 위협용 협상 수단으로 거론됐다.
서울 강서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교육 환경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이들의 학습권을 볼모로 이런 주장을 한다면 서울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