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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역사 앞의 겸허

입력
2007.02.07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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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신문에서 반가운 얼굴을 대하면 '멀리서 찾아온 벗'을 맞는 듯한 기쁨을 느낀다. 한국일보가 연재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명저' 5회째에 실린 <철학에세이> 저자의 사진을 대하는 순간 반가움과 함께 대학 신입생 시절의 일들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그와는 대학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만남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산으로 들어갔고, 이듬 해 복학 후 두어 번 얼굴을 본 후 이번에는 그가 시위로 달려들어갔다.

사람의 향기는 함께 한 세월의 길고 짧음에 달려 있지 않다. 한창 반짝이던 시절에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유독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그도 있었다. 노동운동과 야학활동으로 청춘기를 보낸 그는 40이 훌쩍 넘은 나이에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후회는 없다고 했다. 다만 그 시절의 의미를 깔아뭉개려는 현실은 마음 아프다고 했다. 적어도 개인보다는 사회공동체를 앞세웠던 생각은 소중하다고도 했다. 대학 1학년 때 이미 정서적 안정을 느끼게 했던 그다운 말이다.

● 시대의 짐을 짊어졌던 벗들

지난 시절의 생각은 이내 다른 친구에게로 옮겨갔다. 서울 변두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타고난 영민함과 몸에 밴 성실성이 돋보였다. 대학에서 그의 행로는 크게 바뀌었다. 돌연 학업을 내던지고 부산으로 떠났다. 이른바 현장활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조선소에서 배관공으로 일한 그는 우연한 사건만 아니었다면 그 쪽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것이다.

길을 묻는 사람에게 엄지손가락으로 길을 가르쳐주다가 지나던 사람의 눈을 정통으로 찔렀다. 거액의 치료비가 필요했고, 그나마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출판사로 일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일이 손에 익을 무렵 그는 찍어낸 책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런저런 일자리를 전전했지만 마땅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한 선배의 주선으로 겨우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나 싶더니 지독한 병마가 덮쳤다.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마주한 그의 맑은 눈빛은 잊을 수 없다. 투병의 고통을 드러내기 싫어서, 주변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려고, 어찌나 이를 악물었던지 입술은 다 터져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넘쳤고, 살빛은 투명했고, 눈은 빛났다. 초월자의 모습이 저럴까 싶을 정도였다.

무신론자였으니 어떤 종교적 구원에 기댄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로 이룬 죽음 앞의 평화였다. 그런 지나친 올곧음이 안으로 병을 만들었을 터였다. 남들 다 하는 복학도 하지 않아 대학 중퇴 학력에 머물렀고, 민주화 보상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런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요즘의 현대사 인식 대결이 참으로 안쓰럽다. 한쪽에서는 '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뽐내고,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싸잡아 '수구보수세력'이라고 내친다. 긴급조치 위반 유죄 판결을 내린 법관들의 이름까지 공개하는 마당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빛 바래가는 훈장에 새로 금칠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거꾸로 현재의 권력에 주파수를 맞춘 일부 '386'의 독선과 실패에 실망한 대중적 정서에 편승, 일부 '386'의 문제를 '운동권' 전체의 본질적 문제로 확대하려는 시각도 무성하다. 의식의 밑바닥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도덕적 빚을 덜어보려는 뜻일까.

● 세상을 지탱하는 상호의존성

세상은 상호의존성의 그물로 짜여져 있고, 한 시대는 이념과 행동의 폭 넓은 스펙트럼에 속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작품이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많은 꿈을 버려야 했던 사람들이나 묵묵히 학업이나 생업에 충실했던 사람들 모두가 오늘의 사회성장을 이루었다.

폭압적 체제 아래서도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거나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생활에 허덕여도 '변혁'만 성공하면 된다는 양 극단에 서지 않는 한 얼마든지 가능한 인식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한, 역사와 인생 앞의 겸허이기도 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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