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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천국엔 장미꽃이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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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천국엔 장미꽃이 없다네…"

입력
2007.02.0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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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겨울 넘기시기 힘들다던 옛말 그대로 꼭 두 주일 전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후 남은 배우자의 평균 수명이 7년'이라 시던 말씀 그대로, 어머님 돌아가신지 7년 만에 퍽이나 외로워하시다 그리던 당신 부인 곁으로 가셨다.

아들 딸들이 사지사방에 흩어져 살아 아무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채, 평소 정성스레 간병해주시던 분들 손을 붙잡고 떠나신 걸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온다.

● 이산 1세대 아버님을 보내면서

돌아가신 분이 살아있는 사람들 불러 모은다고, 그동안 적적했던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간 살아온 이야길 나누는 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던 지인들이 하나 둘 다녀가며 저간의 소식을 전해주는 동안, 아버님 향한 덕담을 들을 수 있었음은 큰 위로가 되었고, 퇴임하신지 15년이 지났음에도 당신 제자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조의를 표해옴 또한 가족들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아버님 떠나보내는 자리엔 분단으로 인한 이산(離散)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해 오신 당신 생전의 자취가 그대로 묻어나와 가족들을 숙연케 했다. 1926년 평안남도 강서군 신정면에서 부농의 8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난 당신은,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새파란 열여덟 나이에 혈혈단신 서울로 유학 오셨다 한다.

해방이 되어 잠시 고향에 들른 길에 "넌 곧장 다시 돌아가거라" 어머님의 한 마디가 너무도 단호하여 그 길로 발길을 돌리셨단다. 그것이 어머님과의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이야. 그 후로 60여년을 부모님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아 오신게다.

그 오랜 세월 당신 가슴 속 깊이 묻어두셨을 외로움과 서러움을 자식인들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만, 1974년 7ㆍ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던 날 '이젠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으려나' 희망에 눈물 훔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셨는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던 해 한 번 가보시려느냐 여쭈었더니 "금강산이나 설악산이나 무엇이 다르겠느냐, 고향 땅 아니면 안 가겠노라" 셨다.

장례 둘째 날 아버님 평양사범 동창들이 다녀가시던 자리에 친구 한 분이 주섬주섬 가방을 열더니 종이로 접은 빨간 색 장미 한 송이를 꺼내셨다. 그리곤 "자네 아는가? 천국엔 장미꽃이 없다네" 하시며 영정 사진 왼편 가슴에 꽂아 주셨다. "옛다 이건 자네 부인 몫이네" 챙기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자넨 9호 줄이지? 난 7호 줄이야. 우린 죽어서도 이웃이 되어 고향 땅 바라보이는 곳에 묻힐 테니 너무 섭섭해 말고, 먼저 가서 기다리게." 뒤돌아서는 아버님 친구 분의 뒷모습이 왜 그리도 쓸쓸하던지.

그건 아마도 고향을 등진 채 낯선 타향에서 연고도 없이 모진 세월을 꿋꿋이 살아오셨건만 당신네 삶의 아픔을 기억조차 못 하는 아들딸들의 무심함, 문자 그대로 전쟁과 빈곤을 넘어 오늘의 안락과 풍요를 위한 기틀을 다졌건만 어른 대접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데 대한 무상함, 덕분이었을 게다.

● 아버지 형제를 만날 수 있다면

이제 이산 1세대가 떠나가고 이산 2세대도 장년기를 지나가고 있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이산 1세대 아버님이 지나온 세월의 자취를 가능한 한 소상히 기억하고 세밀히 기록할 수 있길 희망해본다.

당신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을 테지만 남은 일곱 형제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찾아볼 생각이다.

행여 아버님 형제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온다면, 서울 유학 시절 하루 세끼를 "뜯어국'(수제비의 이북말)"으로 연명한 덕분에 평생 수제비를 멀리하셨노라고, 평양사범이 경기고보다 더 좋은 학교라 자랑하시곤 했노라고, 그리고 '칠판을 앞으로 20년 뒤로 40년' 교육에 매진해 오신 분이었노라고… 밤새 들려드릴 생각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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