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긴급조치 위반 1,140명 구제 어떻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긴급조치 위반 1,140명 구제 어떻게

입력
2007.02.02 00:46
0 0

1978년 한 노인은 술김에 박정희 대통령 사진을 가리키며 “저 놈 무식한 놈이다. 한밤중에 총을 들고 들어가 정권을 뺏은 놈이다”고 말했다가 2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비슷한 시기 다른 취객은 “박정희가 정치를 잘못해 살기 힘들다. 김일성이 똑똑하다”고 말했다가 꼬박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사실을 왜곡ㆍ전파한 사람 등을 처벌하도록 한 긴급조치 때문이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공개한 70년대 긴급조치 위반자들은 1,140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평생을 전과자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재심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재심은 법원이 확정판결을 다시 심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형사소송법은 ▦증거가 위ㆍ변조됐거나 허위라는 사실이 증명된 때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등으로 재심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인민혁명당 사건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의 조사를 통해 고문에 의한 조작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재심이 가능했다.

그러나 긴급조치 위반 사건의 대부분은 고문ㆍ조작과는 거리가 멀다. 유죄를 받은 사람들은 대통령을 욕하거나 유신헌법을 비판한 사실 등을 대체로 시인한다. 이 같은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법이 문제였던 셈이다. 대법원이 “긴급조치 판결은 당시 실정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한 결과인 만큼 재심과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입법을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별법 제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1일 “당내 기구를 만들어 긴급조치를 무효화하고 피해자들을 보상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측도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 회복 차원의 특별법 제정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합의안이 도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 법률에 의해 과거 판결을 전면 무효화할 경우 사법시스템 및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특별법 제정이 난무한다면 현행 법을 지키지 않거나 무시하려는 사회풍조를 낳을 수 있다”며 “특별법 제정은 외국 사례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가 만든 법에 의한 판결을 무효화하는 특별법을 만들었던 사례가 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