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른자가 붉은 색을 띠는 오리알을 홍심압단(紅心鴨蛋)이라 하며, 중국인이 유난히 귀하게 여기는 음식이다. 집오리를 야생에서 키울 경우 물고기와 새우 등을 잡아먹어 '노른자'가 자연스럽게 '붉은자'가 되는데, 무병장수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붉은자' 달걀도 마찬가지로 인기가 좋아 베이징과 홍콩의 귀족음식으로 이름이 높다.
그런데 지난 연말 중국 북부지방에서 '붉은자' 오리알과 달걀이 대량 유통돼 당국이 조사한 결과, 사료에 공업용 염료를 섞었던 것으로 확인돼 오리와 닭을 살처분하고 축사를 폐쇄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 중국에서 흔한 수단홍(蘇丹紅ㆍsudan red)이란 이 합성염료는 암홍색 분말로 선박이나 가구의 방수용 페인트, 구두의 광택재 등의 원료로 쓰인다. 쥐나 토끼 등에는 암을 유발하고, 사람은 장기 복용할 경우 DNA 변이를 일으키거나 암과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고 조사돼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식품에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것이 '붉은자'를 만드는데 쓰였을 뿐만 아니라 '빛 좋은 고춧가루'의 재료로 사용됐음이 확인됐다. 말린 옥수수껍질을 갈아서 수단홍으로 물들인 뒤 고춧가루와 고추장에 섞었다는 것이다.
■ 최근 중국 국영CCTV는 이례적으로 '수단홍 고춧가루'의 실태를 연일 보도하고 있으며, 국가품질검사총국(우리의 식약청)은 진짜 고춧가루 선별 방법까지 고지하며 단속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2005년 중국에 진출한 KFC 튀김제품에서 수단홍이 발견돼 학생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조사 결과 범인이 KFC가 아니라 수단홍 고춧가루와 고추장이었음이 밝혀지면서 국제적 망신을 샀다. 이후 중국 당국은 '중국고추=수단홍'이란 이미지를 벗기 위해 대대적인 정화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수시로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 70년대의 국산 톱밥고추는 아직도 기억하면서, 중국산 옥수수껍질고추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덤덤하다. 중국산은 색깔이 칙칙하고 국산은 선홍색을 띤다는 통설을 타고 수단홍 고추가 기승을 부렸을 것임은 뻔하다.
지난해 중국산 고추류는 14만톤이 넘게 수입됐다. 김치에 묻은 것과 밀수로 들어온 것까지 합치면 국내 소비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며칠 전 "철저히 실태를 파악하고 전면적인 안전성 조사에 착수 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KFC파동 때나 이후 중국의 단속 상황이 외신을 탔을 때마다 했던 말과 토씨하나 다르지 않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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