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거나 다리가 부러졌을 때 정형외과를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 병원의 어떤 과를 찾아야 하는지 아리송한 경우가 있다. 질병이 생소하거나, 아니면 이곳 저곳에서 모두 “우리가 치료할 수 있다”고 나서기 때문이다. 때로는 보다 전문적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과를 제대로 찾는 것이 중요하며, 때로는 여러 과를 거쳐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 산부인과냐, 비뇨기과냐
많은 이들이 산부인과는 여성, 비뇨기과는 남성을 위한 진료과목이라고 생각해 요실금과 방광염을 산부인과에서 치료 받는 경우가 흔하다. 예전에는 2시간씩 걸리던 요실금 수술이 테이프 요법으로 대체돼 15분 만에 끝날 정도로 간단해지면서 전문 진료과가 아닌 산부인과에서 쉽게 수술이 가능해졌다. 테이프 요법이란 기침 등 배에 힘이 들어갈 때 소변이 새는, 복압(腹壓)성 요실금에 대한 치료법이다. 테이프로 요도 밑을 지지해 85~90% 치료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단순히 요도를 받치는 근육만 약해진 것이 요실금의 모든 원인은 아니고, 문진만으로 증상을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이규성 교수는 “방광 자체의 수축력이 떨어져 요실금이 나타나는 환자는 테이프 수술을 받으면 오히려 소변을 볼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선천적 기형환자도 테이프 요법은 도움이 안 된다. 이 교수는 또 “복압성인가, 절박성(방광이 저절로 수축해 소변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우)인가 하는 유형이 문진만으로 구별하기 어려울 때는 요역동학검사와 같은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배뇨질환을 전문으로 다루는 비뇨기과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방광염 역시 약물로 간단히 치료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간혹 방광암과 같은 큰 질병의 전조증상일수 있다. 이 교수는 “약물치료가 효과가 없거나, 재발이 잦거나,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경우라면 반드시 비뇨기과를 찾아 정밀진단을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 치과 중에서도 어디?
턱에서 딱딱 소리가 나면서 입을 벌리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턱관절 장애는 3,4명 중 1명은 앓았던 경험이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대부분 저절로 낫지만 도저히 못 견딜 정도라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무슨 과를?
진료과를 세분화하고 있는 치과대학병원에서는 구강내과를 찾는 것이 맞다. 턱관절 장애에 대해서는 교합장치 등을 써서 턱에 있는 디스크의 위치와 모양을 바꿔주고, 초음파나 레이저 등 물리치료로 근육의 긴장을 풀고, 약물을 처방하는 등의 치료를 한다. 3~6개월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호전되지만 만약 소용이 없다면 구강악안면외과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치과대학병원의 경우 어떤 진료과에 해당되는지 모르는 환자를 위해 대학병원의 가정의학과와 같은 진료과를 운영하기도 한다. 서울대 치대병원은 구강진단과를 통합한 구강내과에서, 신촌세브란스 치대병원은 통합진료과에서 초진 환자를 진료해 적절한 진료과로 안내한다.
▲ 치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얼굴에 분포하는 삼차신경이 눌려 생기는 삼차신경통 환자는 처음 치아 부근의 통증이 치통이라고 생각해 치과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때로 의사마저 치통이라고 오진해 이를 뽑기도 한다. 삼차신경통은 잇몸을 찌르는 것 같거나 바람만 스쳐도 아파 음식을 씹지 못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실제 여러 과에서 다양한 치료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완치는 어렵다.
치과 전문의들은 “삼차신경통도 치과 진료 영역에 포함된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래도 치료수단이 제한적이다. 치과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치료법인 약물치료가 전부다. 하지만 마취통증의학과에서는 약물 외에 알코올이나 고주파로 신경을 차단하는 치료가 있다. 신경외과에서는 뇌를 절개해 스폰지와 같은 것을 넣어 삼차신경을 누르는 압력을 줄이는 수술(신경감압술)을 하거나 감마나이프로 삼차신경을 차단한다. 약물치료는 어느 과에서도 받을 수 있지만 이 약이 간에 무리를 주고 점차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정기적으로 진단을 받아야 한다.
▲ 어지러움증 전문 진료과는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증은 원인이 너무 다양해서 여러 진료과를 거칠 수밖에 없는 증상이다. 귀 속 평형기관의 문제일 경우엔 이비인후과, 뇌종양이나 중추신경계의 문제라면 신경과, 신경외과에서 해결해야 한다. 안압이 높거나 초점이 맞지 않아도 어지러워진다. 당뇨나 갑상선 질환과 같은 대사질환이나 저혈압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어 내과 진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물론 원인에 따라 어지럽게 느끼는 것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나를 중심으로 주변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거나 자세를 바꿀 때 어지럽다면 귀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마비나 언어장애 같은 증상이 함께 오면 중추신경의 문제일 수 獵? 그러나 정확한 원인을 선뜻 감별하기가 어려워 불가피하게 여러 과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여러 과가 협진을 하는 클리닉이 있는 종합병원을 찾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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