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노다, 차려내는 상영. 요리의 맛과 멋을 책임지는 부부다. '요리하는 남자' 김노다(32)씨는 신세대 주부들에게 사랑 받는 요리 선생님. 외국인에게 요리비법을 잘 알려주지 않는 일본에서 서빙, 설거지에 계란말이만 6개월씩 하면서 얻어 들은 조리법을 영수증이나 전단지에 몰래 써서 자기 것으로 만든 음식 마니아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서 다양한 요리를 배웠다. 남편의 음식을 예술로 포장하는 김상영(30)씨는 푸드스타일리스트. 미대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한 그는 남편을 만나면서 음식에 빠져들었고 푸드스타일링과 테이블세팅의 세계에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나는 지금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드라마 <주몽> 의 뒤늦은 팬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 드라마를 꼭 챙겨보는 버릇이 언제부턴가 생기게 되었고, 어떤 장면에서는 사뭇 흥분하며 빠져들곤 한다. 사실, 대부분 시청자들의 주요 관심사인 주몽의 신들린 활솜씨나 한민족의 유래 없는 대영토의 확장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드라마 전개 중 간간히 비추이는 연회장면, 신녀들의 제를 올리는 장면 등 그 당시 중요행사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눈길이 끌리곤 했다. 누구나 한 우물을 다년간 열심히 파다보면 생기는 자기만의 직업병이라고나 할까. 주몽>
그런데 최근 나의 관심을 확 끌어당긴 장면이 있었으니, 이는 다물군의 군사미 부족과 관련 주몽과 소서노가 대체식품을 찾던 중 ‘육포’라는 것을 만들어내게 되고 출정하는 군사들에게 이를 나누어주어 힘을 돋우게 하는 장면이었다. 아! 이 육포가 그 육포였던가. 물론 그 시대에 살았던 이보다 지금 나의 입은 더 간사해져 짭조름하면서 달달하고 깊은 맛이 배어있는 육포를 찾고 있지만 나는 드라마 속 군사들과 같은 역사를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가벼운 두근거림이 일어났다.
내가 어렸을 적 아빠의 술 안주상에 가끔 육포라는 것이 출연했고, 세 딸을 가진 나의 아빠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셋을 무릎에 앉히고는 이 귀한 육포를 먹여주곤 했다. 편식이 유난했던 난, 어린 나이임에도 그것이 생고기를 말린 것이라는 걸 알고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도망치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면 입맛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 입맛이 어디 가지는 못하겠지만 때로는 못 먹는 음식(엄밀히 말해 싫어해서 피하는 음식이라고 해 두어야 하지 않을지.)을 먹어야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이런 순간이 시발점이 되어 어느 순간에는 즐기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나는 지금 세대로서는 아주 조금 이른 스물 여섯에 결혼을 했고, 나에게도 생전 처음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다가왔다. 시어머니께서 일적인 관계로 캐나다에 다녀오셨고 평소 잘 즐겨 드시지 않지만 너무 맛있어 혼자 먹기 아까워 사들고 오셨다며 육포를 내어주는 것이었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난 얼버무리다가 육포 한쪽을 들어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입안에 한순간에 퍼지는 달콤하면서 짭조름한 맛이 생각보다 괜찮았고 육포를 상당히 좋아하는 남편 노다씨 덕에 한동안 함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최근 들어 31년간 몰랐던 친정엄마의 육포 만드는 손맛에 나와 남편이 놀란 적이 있다. 시어머니가 주셨던 물 건너온 육포는 첫맛이 강하고 씹을수록 육즙과 양념이 빠져나가 나중에는 질겅질겅 씹었다면, 엄마가 만든 육포는 많이 두툼하지도 않고 첫맛이 강하지도 않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면서 달콤하고 담백하였다. 맛있는 요리를 배우는 것에 남다른 집착이 있는 남편은 나 몰래 장모를 졸라 육포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아와 나에게 맛이 똑같냐며 물어 내심 흐뭇했던 적이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난 편식이 아주 심한 아이였고, 입맛에 맞는 음식만 가려먹었다고 해야 옳을 정도로 싫은 음식은 절대 안 먹는 아주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음식이라면 가려서 먹는 아이와 음식을 사랑하고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남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을 평생 낙으로 생각하는 아이가 만나 결혼을 했으니 이런 상황연출은 나에게는 너무나 빈번히 일어났다.
노다씨는 결혼을 하고 너무 바빠 신혼여행을 두 달 뒤에나 다녀온 게 미안했던지 하루는 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음식을 선사하겠노라고 했다. 물론 음식준비는 물론 맛있게 요리해 서빙까지 본인이 다 할 터이니, 나는 테이블만 예쁘게 꾸며주면 된다고 해 오랜만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커플동반 파티를 하게 됐다. 정말 환상적인 음식들을 내어주며 순식간에 친구들은 물론 그들의 남자친구들까지 모두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노다씨를 보며 난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감에 빠져있었다.
이제 식사가 마무리에 다다르고, 남편은 와인과 함께 야심차게 준비한 안주거리를 가지고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과일에 얇은 햄을 두른 이상야릇한 안주였는데, 예전에는 많이들 먹었다는 무화과에 생햄이라고 일컬어지?프로쉬트를 감아 예쁘게 담아 내온 것이다. 사실 햄이라고 하면 스팸과 소세지가 전부인 나에겐 육포만큼이나 충격인 프로쉬트. 일단 냄새부터 맡아보고 도저히 소화할 수 있는 냄새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포크를 대지도 않으며 와인만 홀짝 홀짝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구박은 꿋꿋이 웃어 넘길 수 있으나 친구들의 핀잔은 피할 수 없는 법. 사랑스런 남편이 뭘 해줘도 먹을 수 있는 신혼 아니냐는 핀잔 때문에 또 다시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야 말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한 입에 넣어 빨리 삼킬 심사로 두 눈 질끈 감고 후다닥 넣어 먹는데, 무화과의 담백한 맛에 깨 같은 씨가 씹히고 그 사이사이로 오랜 시간 숙성된 햄의 깊고도 진한 향이 베어 이런 황당하면서 조화로운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할 때 보통 굳은 의지와 성실함 등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 의지와 상관없는 상황에 뜻하지 않게 매료되어 평생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려주지 않는다. 뭐. 내 남편만 보더라도 일본에서 국제경영을 배우면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주방 일에 매료되어 평생 업으로 바뀌었으니, 때론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즐기다보면 훗날에 더 발전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은근한 기대심을 가지면서 오늘 하루도 원더풀 월드(Wonderful World)로 들어간다.
■ 레서피
친정 엄마표 육포
육포재료 : 홍두깨살 600g (한근)
양념재료 : 진간장 5큰술, 조선간장 1큰술, 설탕 3큰술, 청주 1큰술, 배 50g, 양파 50g, 마늘 7g, 생강 3g, 월계수잎 2장, 마른홍고추 1개, 청양고추 1개, 황기, 정향, 후추, 소금 약간
1. 홍두깨살양념장 만들기
양념 재료를 모두 넣어 팔팔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건지를 건져낸 후 차게 식혀낸다.
2. 핏물빼기
홍두깨살을 0.7cm 두께로 썰어 기름손질을 한 후 찬물에 5시간 동안 담가 핏물을 뺀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1시간에 한번 씩 물을 갈아주고 갈아줄 때마다 주물럭거려 핏물이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핏물이 다 빠지면 체에 받쳐 물을 빼고 마른행주로 꾹꾹 눌러가며 잔 물기를 쏙 뺀다.
3. 양념재우기
핏물 뺀 고기를 양념장에 넣어 양념국물이 남지 않을 때까지 손으로 바지락바지락 주물러 가며 양념이 배도록 한다. 이 때 오래도록 주물러 주어야 국물이 남지 않고 양념이 쏙 배게 된다.
4. 말리기
넓은 쟁반에 욱포를 나란히 펼쳐 선선한 곳에 말리는데, 이 때 바람을 쐬이면 더 빨리 말릴 수 있다. 선풍기를 틀어 말려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 일단, 하루 반나절 정도 말린 후 꿉꿉하게 굳으면 홍두깨나 방망이로 밀어 잘 펴준 후 정종 1큰술에 꿀 1작은술을 섞어 붓으로 육포에 얇게 발라주고, 다시 펼쳐 이틀간 말려준다.
무화과 프로쉬트
무화과 프로쉬트 재료 : 무화과 4개, 프로쉬트 8장, 까망베르치즈 1/2개, 바질잎 8장
소스재료 : 올리브오일, 소금, 발사믹식초
1. 밑재료 준비하기
무화과와 바질은 흐르는 물에 헹구어 내듯 씻어 마른 행주로 깨끗이 닦아주고 무화과는 4분의 1등분하여 준비한다.
프로쉬트는 길게 2분의 1등분하고, 치즈는 얇게 편썰어 놓는다.
2. 무화과에 프로쉬트 감싸기
무화과 씨부분 위에 치즈를 올리고 그 위에 바질을 얹은 후 프로쉬트로 감싸듯 돌려 감아 접시 위에 예쁘게 돌려 담는다.
3. 소스 만들어 뿌리기
올리브 오일, 소금, 발사믹 식초를 섞은 소스를 살짝 뿌려 낸다.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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