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애 낳는 기계’에 비유해 파문을 일으킨 현직 장관의 사퇴 여부를 둘러싸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후생노동성 장관은 지난달 27일 강연에서 “15~50세 이상의 여성 수는 정해져 있다. 낳는 기계, 장치의 수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야나기사와 장관은 당시 발언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즉시 사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대표 등 야당 지도자들은 지난달 30일 그의 발언이 “여성의 인권을 부정하는 여성 멸시의 발언”이라며 아베 총리에게 장관직 사퇴를 정식으로 요구했다. 아베 총리가 이를 거부하자 일본공산당을 제외한 야당은 국회심의의 거부에 들어갔다. 모든 야당은 길거리 항의 집회도 개최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야나기사와 장관은 연일 ‘깊은 사과와 반성’을 표명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많은 여성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저도 깊이 사과한다”며 여러 차례 머리를 숙였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중이다.
문제는 자민당 내에서도 사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4일의 아이치(愛知)현 지사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여당의원들은 이번 파문의 성격이 “선거에 치명적인 측면이 있다”며 야나기사와 장관과 아베 총리에게 신속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말 혼마 마사아키(本間正明) 정부세제조정회장과 사타 겐이치로(佐田玄一郞) 행정개혁담당 장관이 연달아 낙마하는 식의 사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당시 문제가 발생하자 이들을 줄곧 옹호했지만, 여론이 악화하자 결국 뒤늦게 사임시킬 수 밖에 없었다.
아베 총리로서도 속사정은 있다. 그는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그동안 잠복돼 온 문제각료에 대한 ‘임명책임’을 추궁당하게 돼 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버티기’라는 도박을 택한 셈이다.
■ 아베 내각의 문제 각료
▦혼마 마사아키 정부 세제조정회장
-혼외 여성과 국회의원 관사에서 동거. 지난해 12월21일 임명 1개월만에 사임
▦사타 겐이치로 행정개혁 장관
-정치자금을 부적절하게 회계 처리해 지난해 12월28일 사임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성장관
-출자법 위반 혐의를 받는 기업과 관련된 비영리민간단체(NPO) 법인의 발족 심사과정에서의 압력 의혹.
▦이부키 분메이 문부과학성장관
-의원 사무실 비용 불투명 처리 의혹.
▦규마 후미오 방위성장관
-"미국은 너무 잘난체 하지 말라" 는 등 연이은 실언성 미국 비판 발언으로 파문. 사임 가능성
▦야나기사와 하쿠오 노동후생성장관
-1월27일 강연에서 "여성은 애 낳는 기계" 발언으로 사임 압력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