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28)씨는 지난해 4월 11일을 잊을 수 없다. 뇌병변(腦病變) 장애 1급인 그는 서울시청 앞에서 정부 지원의 활동보조인(간병인) 서비스 도입을 주장하며 동료 50여명과 함께 노숙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동휠체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김씨에게 20일 넘게 이어진 노숙 생활은 힘겨웠다.
그는 머리도 식힐 겸 동료 3명과 나란히 광장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얼마쯤 지났을까. 청원경찰이 김씨 일행을 향해 “들어가면 안 된다. 나가라”고 명령했다. 이유는 없었다. “우리도 세금 내는 시민인데 왜 그러느냐”고 따지자 “당신들이 무슨 세금을 내느냐”며 오히려 호통을 쳤다. 소란이 계속되자 서울시 직원이 나타나 “100㎏이 넘는 전동휠체어는 잔디를 손상할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비장애인이 구둣발로 잔디를 밟는 건 괜찮고 전동휠체어는 안 된다는 말인가?” 김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를 이유로 공공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진정을 냈다.
9개월여가 흐른 31일 인권위는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잔디 손상 가능성이 있다 해도 장애인이 신체의 일부와 같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공공시설을 이용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권’이라는 취지다. 서울시도 수용 의사를 밝혔다. 시 관계자는 “장애인이라고 광장 출입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며 “당시 잔디를 새로 심어 싹이 트는 시점이라 주의를 당부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씨의 생각은 다르다.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전동휠체어가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안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이동권 등 장애인 권리 운동에 뛰어든 것도 ‘장애인이 살아갈 만한 사회가 누구나 살 수 있는 세상’이란 믿음 때문이다.
이날도 그는 낡은 전동휠체어를 이끌고 척박한 거리로 나섰다. 삭발도 했다. 절박함을 알아달라는 무언의 절규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