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의 소설 <축생도> 를 보면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산골의 부인네가 응급질병으로 비오는 날 수십리 길의 읍내 병원까지 갔지만 남루한 행색 때문에 거절당해 사경을 헤매다 결국 가축병원 수의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축생도>
하지만 수의사는 의료법 위반을 이유로 보건소로부터 폐업이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여기에 적용된 의료법이 일제시대 총독부가 만든 것이고 그것을 아직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의사·병원만을 위한 개정안
그 동안 의료법은 부분적으로 수정되긴 했지만 의료환경이나 사회발전의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어 복지부가 차제에 전면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복지부는 의료계, 시민단체 등 관련 전문가와 10차례에 걸쳐 공동작업을 하였고, 최종적으로 내놓은 안은 환자권리보호와 규제완화를 통한 의료산업화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짜여있다.
환자권리보호를 위해 의료인의 설명의무, 진료기록 위변조 금지, 표준진료지침제정, 입원실 야간당직제도, 병원감염관리 등을 규정하였고, 의료인에게는 의료법인의 합병, 의료광고, 의료기관 내 음식점 등의 부대영업, 비급여 환자유인ㆍ알선, 진료비 할인, 노인ㆍ여성ㆍ재활 등 전문병원 설립, 양한방 협진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의료공공성 저하, 건강불평등 심화, 의료비 폭등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설명의무 법정화로 고소남발우려, 야간당직제로 동네 의원 내 입원실 유지곤란, 환자유인ㆍ진료비 할인제도로 인한 수익양극화, 표준진료지침에 의한 의료규격화, 간호사ㆍ유사의료행위자에 의한 의권침해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의학의 학문성과 간호진단을 인정하지 않은 채 양한방협진제도와 간호사의 야간당직제도는 찬성하고, 약사의 조제ㆍ투약권을 의료인에게도 달라고 하는 이중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복지부의 개정안을 보면 가히 의사와 병원의 천국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자의 권리강화라는 것은 사실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국가보건의료체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 전부 허용되어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의료계는 기존의 의료독점권이 더 강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으니 오히려 황당한 느낌이다.
●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야
의료인의 전문화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예컨대 전문간호사가 과거 의사가 하던 일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고, 첨단의료기기의 도움으로 복잡한 검사를 간단하게 하는 등 의료계 내부에서 분업과 경쟁의 물결이 존재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의협은 이러한 대세의 흐름을 정면에서 거부하고 있다.
환자는 자신의 뜻에 따라 치료받고, 진료정보를 정확히 알고, 응급상황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의료인에게 설명의무, 진료기록, 당직제도, 보수교육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이다.
복지부는 개정안에 국민의 목소리가 충분히 담겨있는지 한번 더 검토해 보아야 하고, 의협은 다른 의료전문인이나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외면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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