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저 가흠이요. 전할 소식이 있어서 편지 써요.
생각해보면 보름 동안의 크루즈 여행, 정말 꿈같은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배를 타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던 날, 은색 캐리어 가방을 들고 천안역에서 기차에 오르던 형이 생각나요. 남색 반코트에 체크무늬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는데, 예전에 보았던 형의 모습보다는 조금 살이 붙은 것도 같아 좋아보였어요.
어쨌든 기차에서 만났을 때 서먹했던 것은 맞죠? 형과 오랜만에 마주앉고 보니 마음이 슬슬 풀렸어요. 꼭 잠가두었던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하나씩 맞춰지며 열리는 기분이랄까. 부산이 그렇게 가까운 줄은 처음 알았으니까. 버스로 내려가고 있던 김상익 선생님하고 정영문 선배를 이미 아쉬워하기도 했었는데. 환경재단의 김상익 선생이 은희경 선배의 남편이라는 걸 말해줬을 때, “어쩐지 나를 무자게 잘 알더니만. 몰랐네, 나는”하며 더욱 크게 뜨던 형의 부리부리한 루마니아인을 닮은 눈, 이젠 익숙해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들은 맡겨둔 채 제가 형의 손목을 끌었지요. 혹 출항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걱정하는 형을 막무가내 자갈치 시장으로 끌고 가 대낮부터 술을 먹었지요. 실은 예전에 형에게 받았던 도움에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거든요.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꿈틀거리는 곰장어 처음 먹어본다며 좋아했잖아요. 저도 너무 좋았어요. 형은 은근히 정영문 선배와 저와 한방을 쓰는 게 걱정이 되기도 한 모양이었는데, 실은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첫날밤에 이미 그 걱정 말짱해졌지요. 왜 이제껏 만나지 못했는지 아쉬워했었잖아요. 쭉 같이 살아온 느낌마저 드는 게 신기했었는데.
고백컨대 형 때문에 여행이 너무 행복했어요. 매일 밤 나누던 문학 얘기, 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서로 독려하던 밤, 모두 너무 그립답니다. 형 소설 때문에 긴 배 여행이 지루하지 않았어요. 형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그 소설의 재미,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구요. 낭독회에서 형의 제 소설 낭독에 답하여 제가 형 소설을 읽을 땐 넘쳐나는 미문(美文)들에 잠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는데. 어쨌든 저, 여행 후에 형의 소설을 기다리는 열혈 팬이 되었답니다.
이런, 전하려던 소식만 까먹을 뻔했어요. 기다려온 여행 뒤풀이하자고요. 운영선배가 산속 좋은 집에서 산 밑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네요. 이사하는 날 저녁에 맛있는 음식 나누어 먹자고. 힘들겠지만 올라오시라구요. 은희경 선배, 정영문 선배, 김상익 선생님도 모두 오시기로 했어요. 그리워요, 형. 빨리 봐요.
2007년 1월 가흠
▲ 김다은의 우체통
'피스 앤 그린보트' 위의 두 사람… 영화의 한 장면
두 소설가의 조우가 영화 장면처럼 생생하다. 2006년 12월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재단이 주관한 ‘피스 앤 그린보트’에 은희경 정영문 전성태 천운영 백가흠이 대표로 참가, 함께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됐다. 부산에서 배를 타기 위해 백가흠은 서울에서 출발했고, 전성태는 천안역에서 백가흠이 탄 바로 그 기차에 올랐던 것!
크루즈 여행의 특성상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백가흠은 “성태 형의 <국경을 넘는 일> (창비)을 내내 읽었다”고 했다. 이 소설 속에도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일행 박, 얀, 나오코 등이 나온다. 운 좋게도 소설집 <국경…> 은 자신의 저자, 독자,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들과 ‘국경을 넘은 일’을 경험한 셈. 기표와 기의의 아스라한 일치! 국경…> 국경을>
소설가ㆍ추계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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