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해마다 똑 같은 시험 문제를 내고 토씨하나 바뀌지 않는 ‘강의 노트’로 수업하는 교수들이 사라질 전망이다.
서울대 공대는 31일 국내 처음으로 모든 강의 내용과 자료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는 공개 강의 프로그램(오픈 코스웨어)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김도연 공대학장은 “교수들이 제출한 강의 자료를 홈페이지에 그대로 올려 학생은 물론 일반인도 볼 수 있게 할 것”이라며 “교수들 사이의 자발적 경쟁을 이끌어 내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MITOCW’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 철학, 인류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강의 자료와 강의 모습 등이 1,500건 이상 공개돼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현재 교수 10명 중 8명 꼴로 공개할 정도로 참여도 또한 높다.
서울대 공대는 일단 교수들로부터 지난해 2학기 강의계획서, 강의일정표, 강의자료, 시험문제와 학생들의 모범답안, 과제물 등이 담긴 CD를 받고 있다. 이건우 교무부학장은 “마감시한 이었던 이날까지 전체 교수 298명(전임강사 포함) 중 15명이 자료를 제출했다”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일부 교수들 요청에 따라 마감을 1주일 연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대는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1차 심사 위원단이 이 중 10개를 추리고 공대 교수 5~7명이 최종 심사해 가장 잘 된 작품 5개를 뽑아 각각 포상금 300만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학교 안팎에서는 강의 내용이 더 알차질 것이라며 서울대 전체는 물론 다른 대학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분위기다. 자연대 지구환경과학부 고철환 교수는 “현재 교수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논문 제출 편 수 인데다 강의에 대한 평가도 학생들 반응이 고작이어서 강의에 소홀한 교수들이 적지 않다”며 “모든 것이 공개되면 교수들이 강의에 더 많이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대로 전해져 온 ‘예상 문제’와 ‘모법 답안’에 의존했던 학생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범대 3학년 강모(22)씨는 “선배들이 전해줬던 ‘족보’는 더 이상 쓸모 없어질 것 같다”며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답안과 과제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진땀 좀 흘리게 생겼다”고 했다.
지방대에서 강의 중인 송모(31)씨는 “누가 강의 잘 하고 어떤 자료가 좋은 지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면 교수들 끼리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며 “학생들도 좋은 자료를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돼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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