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성녀가 열연한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을 보면, 한국전쟁 당시 빨갱이로 몰려 어쩔 수 없이 벽 속으로 숨어 들어간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행동들 때문에 좌익분자라는 오해를 받았고, 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집 벽 틈으로 들어간다. 벽>
그리고 그 상태에서 30여 년을 살아간다. 몸은 갇혔지만, 가장으로서 집안의 경제사정에 눈을 감고 있을 수만은 없어, 폼은 나지 않지만, 베틀에 앉아 베를 짜기도 한다. 하나뿐인 딸은 아버지가 짠 모시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을 한다.
연극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예술의전당 건너편 인도로 걸어갔는데, 걷다 보니 자꾸 바로 옆, 커다란 통유리로 속을 환히 드러낸, 수입차 매장 쪽으로 눈길이 갔다.
그곳 매장엔 한두 명의 직원들이 피곤한 얼굴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시간은 밤 열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수입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곳 저곳 설치한 화려한 조명이 직원들의 얼굴에도 고스란히 떨어져, 그들의 나이를 쉽게 짐작케 해주었다.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모두 '자발적 장기수'가 되어, 유리벽 저편에서 베를 짜고 있는 아버지들. 벽은 어쩌면 지금도 계속,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념도, 사상도 넘어선, 생활이란 벽.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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