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스가 지나간다. 이번에는 렉서스다. 쏘나타도 가끔 끼어 들지만 외제나 최고급 국산차 일색이다.
주말 버스전용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전용차로는 우리사회의 '배째라 문화'를 잘 보여준다. 게중에는 경고등을 켜고 달려야 할만큼 위급한 상황도 있겠지만 대부분 돈이나 배짱 두둑한 사람들이 차량 주인이라고 보면 된다.
법규 위반인 줄 알지만 무서울 게 없다. 재수 없이 걸린다 해도 6만원만 내면 그만이다. 승용차는 차종에 관계없이 범칙금이 똑같다. 안 걸릴 수도 있다. 재주껏 단속만 피하면 남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는데 길바닥에서 시간을 낭비할 까닭이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다 적발된 차량은 9만6,249대였다. 언뜻 보면 적지 않은 숫자다. 하루에 두세 번 걸린 차량도 있다. 하지만 위반 차량 모두가 적발됐다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보는 사람은 괴롭다. 꽉 막힌 도로도 짜증나지만 얄미운 위반 차량에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 그렇다고 선뜻 따라 할 수는 없다. 돈도 배짱도 없는 새가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주중 출ㆍ퇴근 시간에도 경부고속도로에서 버스전용차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용역 연구 결과 수원IC∼서초IC 24.2㎞ 구간에 전용차로를 설치하면 버스의 경우 출근시간대 상행선은 11분9초, 하행선은 6분32초 빨라진다고 한다.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에 통행우선권을 주는 전용차로 제도는 탓할 게 아니다. 그러나 법을 지키면 손해를 보고 어긴 사람은 이익을 얻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단속도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교통사고 위험 때문에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며 "승용차 운전자의 반발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찰은 헬기를 동원한 단속에 나선 적도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중단했다. 지금도 주말과 휴일에는 순찰차와 카메라가 위반 차량을 잡아내고 있지만 탐지기 등 첨단장비 앞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올해 시무식에서 노자의 <도덕경> 에 나오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를 강조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겨 보여도 결코 죄인을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 좋은 말이다. 도덕경>
이 사회가 법대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죽기 살기식 갈등과 다툼이 누그러질 수 있다. 강남의 땅부자와 떼돈을 번다는 성형외과 의사, 변호사에게 욕할 이유도 없다. 가진 사람들이 번만큼 세금을 내고 그 돈이 양극화 해소 등에 쓰여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나 현실은 한참 다르다. 국민 대부분은 전용차로 단속처럼 '죄인'을 잡기 위한 그물 곳곳이 찢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의지도 약해 보인다. 청와대마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죽는 소리를 해대는 마당에 그물을 촘촘히 짜고 죄인을 엄히 다스릴 힘과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찢겨진 그물을 방치하면 우리 사회의 화합과 신뢰 회복은 갈수록 멀어진다. 온 나라가 대선에 올인 할 올해에는 그물이 더욱 엉성해 질 가능성이 높다. 참여정부는 그나마 우리사회의 투명성은 높여 놓았다는 평이 있다. 참여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그물을 촘촘히 짜는 데 힘쓰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이종수 사회부 차장대우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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