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판사 실명 공개 방침에 대해 법원은 “이런 식의 과거사 정리는 옳지 않다”고 반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거 잘못된 판결은 특별법 제정이나 재심 확대, 판례 변경 등 법이 정한 장치를 통해 바로잡아야지 특정 판사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이름이 거론되는 현직 대법관 등 고위 법관들은 1970년대 당시 판사로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배석판사였다”며 “재판에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었는데도 같은 재판부에 속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몰이식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법원 관계자는 “2005, 2006년 이용훈 대법원장이 일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 이들이 과거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관여한 사실을 이미 검토했다.
이 대법원장도 많이 고민했지만 이런 식으로 인적 청산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이들을 대법관으로 제청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사법부도 자체 과거사 정리를 준비하고 있다”며 “실명 공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고 사법부 구성원이 광범위하게 동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과거사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하면서 “과거 사법부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고 언급했으며 대법원은 70, 80년대 판결문 6,000여건을 수집, 분석해 왔다.
일선에선 격앙된 분위기도 감지됐다.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사법부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법 테두리 안에서 판결할 수밖에 없다”며 “실정법에 따라 판결했는데도 돌을 던지는 것은 법치주의 및 사법부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판사는 “나중에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경우 그동안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옷을 벗어야 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70년대 당시 긴급조치 위반 사건들을 수사한 경찰이나 검사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고 판결문에 이름이 나와 있다는 이유로 판사들만 표적이 되는 게 억울하다는 불만도 법원 내부에서 흘러 나왔다.
과거사위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현직 대법관 등 고위 법관들은 묵묵부답이었다.
한 대법관은 취재진을 피해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근했으며, 다른 대법관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거나 “노 코멘트”라고 말한 뒤 손사래를 쳤다. 온종일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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