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포칼립토> 는 아찔하다. 관객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눈을 질끈 감고 싶거나 뇌리에서 털어내고 싶은 ‘날것’의 장면들이 꼬리 물 듯 스크린을 채운다. 사람의 가슴을 갈라 꺼내진 심장이 시뻘건 피를 뚝뚝 흘리며 박동 치고, 표범이 사람 얼굴을 물어뜯고 으깬다. 수많은 사람의 머리가 계단을 통통 굴러 땅 위로 처 박히는 장면 등도 여과장치 없이 영사된다. 아포칼립토>
웬만한 고어영화(신체가 잘려나가는 장면 등을 통해 공포를 유발하는 영화)는 저리 가라 할만큼 눈을 치켜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장면의 연속. 그러나 용기를 갖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 대가로 펄떡이는 삶의 원시성이 분출 시키는 흥분과 두려움의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만끽하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마야 문명 말기. ‘달리는 거북이’ ‘부싯돌 하늘’ 등의 이름을 가진 채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삶을 살던 숲 속 사람들의 평화가 순식간에 깨진다. 가뭄으로 시달리는 국가를 구하기 위해 태양신의 제물을 찾아 나선 인간 사냥꾼들이 마을에 들이닥쳐서다. 동료들과 굴비 엮듯 끌려갔던 ‘표범 발’(루디 영블러드)은 하늘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나 인간 사냥꾼들과 숲 속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영화 속 인간의 맨몸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은 짜릿한 전율을 선사한다. 특히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숲속을 내달리며 연출하는 추격전은 단출하면서도 첨단 무기가 등장하는 액션영화가 창출할 수 없는 극도의 긴장감을 펌프질한다.
그러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학자 윌 듀란트의 ‘위대한 문명은 정복되지 않는다. 스스로 붕괴되기 전까지’라는 거창한 문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카메라는 문명의 흥망을 직접적으로 다루기 보다 한 인간이 죽도록 고생한 영웅담을 클로즈업한다. 특히 중남미 고대문명의 멸망이 서구의 침탈이 아닌 내부의 야만성에 의해 붕괴됐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은 개운치 않다.
제목 <아포칼립토> (Apocalypto)는 그리스어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31일 개봉, 18세. 아포칼립토>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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