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덴브로크가(家)의 사람들> 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그의 대표적 장편소설이다. <어느 한 가족의 몰락> 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이 소설은 작가의 고향인 뤼벡의 상인 부덴브로크 집안의 4대 100년에 걸친 이야기다. 번영에서 몰락에 이르는 과정을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린 걸작이다. 어느> 부덴브로크가(家)의>
1대 부덴브로크는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상재(商才)로 부를 일으키지만 나약한 성격의 2대, 예술에 심취한 3,4대를 거치며 허물어진다. 여기서 따온 '부덴브로크 현상'은 기업이 100년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쓰인다.
▦ 염상섭의 소설 <삼대> 역시 이름난 만석꾼 조씨 가문이 일제 치하에 사회적 격동기를 거치며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속설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삼대>
역사에 등장하는 성공적 치세도 100년을 넘는 일이 드물다. 현대식 경영이론으로 말하면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가 될 것이다. 연초 재계 인사에서 재벌 총수의 2, 3세들이 대거 경영전면에 나서 주목을 끌었다. 특히 삼성의 3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전무로 승진하면서 최고고객관리자(CCO) 직책까지 부여받아 경영승계에 한발 더 다가섰다.
▦ 내로라 하는 기업의 미래, 즉 한국경제의 미래를 짊어진 이들 젊은 경영인의 성공조건은 무엇일까.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아 이재용 전무에게 그대로 전했다는 '경청(傾聽)'이란 휘호는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자신의 말을 앞세우지 말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는 겸손한 자세와 열린 마음가짐에 대한 당부이다. 누구나 새겨야 할 삶의 지혜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부와 권력을 가진 재벌 2,3세들은 교만과 독선에 흐리기 쉬운 점을 각별히 경계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 수성의 열쇠는 역시 경영 능력과 리더십이다. 무능한 2세가 경영을 승계해서 실패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정당한 부의 세습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지만, 2세라고 무조건 경영권을 맡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경영자로서 자질이 없다면 뒤로 물러나 대주주의 역할만 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기에 경영 전면에 나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너로서 영광이 아니라 경영인으로서 혹독한 시험이다. 구시대적 행태와 결별하고 기업이 존경받는 풍토를 만드는 일도 수성 못지않게 그들에게 부여된 무거운 사회적 책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