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경(30)씨는 <마티> 라는 1인 출판사의 사장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출판사 대표이고, 마티는, 1인 출판사로는 유일하게 인문서적만 내는 곳이다. 그는 2005년 4월 출판 등록한 이래 지금껏 17종의 책을 냈고, 그 책들을 찾는 이들이 적으나마 꾸준히 있고, 타산 앞세워 단 한 권도 절판하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스러워 한다. 가장 최근에 낸 책이 나치 독일의 군수장관을 지낸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 서서> (957쪽ㆍ3만7,000원)이다. 그런데, 출간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이 책을 그 스스로 절판 시켰다. “오자가 30여 개나 돼 독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수정판을 찍어 구매자에게 다시 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억-제3제국의> 마티>
‘여유가 있나 보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돈 안 되는 인문서만 고집하는 것도 그렇고, 이번 결정도 무모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땅이 좀 있어요’라고 말하고 웃어줘요. 문을 닫네 마네 하는 판인데 말이죠.”
-그 정도로 손실이 큰가.
“들인(일) 돈만 쳐서 약 2,500만원 정도 돼요. 제 책은 초판 2,000부를 1년 안에 소화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재판 찍으려면 또 목돈 들고, 그 돈 회수하려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고…. ‘투자- 회수- 재투자’의 아슬아슬한 균형에 이처럼 치명적인 변수가 터진 거잖아요.”
-대안은 없었나. 가령, 정오표를 따로 낸다든가.
“이틀 동안 고민도 하고, 조언도 구했어요. 그런데 내용상의 오류가 아니라 단순 오ㆍ탈자가 대부분이에요. 마티 이미지에는 그런 오자가 더 치명적일 수 있거든요. 후회하진 않아요.”(그는 ‘오프 더 레코드’를 조건으로 이번 사태의 경위를 설명했는데, 그 역시 어이 없는 피해자였다. 그렇다고 책임이 경감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이자 책임자인 당사자는 이중의 고통, 곧 피해의 상처와 책임의 하중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제가 사는 오피스텔 보증금(2,000만원)을 빼기로 했어요. 사무실(보증금 500만원)은 빼봐야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현재 진행중인 책만도 10종이 넘고, 집필이나 번역이 거의 마무리된 것도 있어요.”
대학 96학번인 그는 수습 월급 150만원의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4개월 만에 월급 50만원 주는 출판사로 이직했다. “기업 안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과 역량을 오롯이 책에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고 했다. 독자층이 적은 분야에 기약 없이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는 흔치 않다. 그래서 차린 게 마티다. 그는 자신의 모든 책의 기획ㆍ편집ㆍ디자인을 해왔다.
“우리 근대 형성에 일본 못지않게 영향을 준 서양 근대에 대한 책은 많지 않아요.” 세기말 파리의 시각문화 양상을 분석한 책 <구경꾼의 탄생> 이나, 20세기 초 상용화된 최초의 항공 운송수단인 비행선이 대중 문화에 미친 영향을 살핀 <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 등이 그렇게 출간됐다. 서양 미학사의 고전인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도 그가 낸 책이다. 숭고와> 비행선,> 구경꾼의>
돈이 돈을 버는 자본의 논리가 출판시장을 장악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먹이 피라미드 안에, 돈 없이 돈 안 되는 인문서만 내는 마티의 자리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없다. 주거와 사무를 겸할, 보증금 싼 집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며 털고 일어서던 그는 “다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제가 낸 책이 모두 살아있잖아요. 뜨겁게 활활 타지는 않아도 가장 오래 타는 출판사를 만든다는 게 제 모토랍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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