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 자’라거나 ‘성명 석자’라는 표현이 드러내듯, 한국사람의 성명은 보통 세 음절이다. 성(姓)이 대체로 한 음절이고, (성을 뺀 좁은 의미의) 이름이 통상 두 음절이다. 성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이름 두 음절 가운데 한 음절은 흔히 (종)형제와 공유해 항렬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성명 석 자 가운데 당사자에게 고유한 것은 한 음절뿐인 경우가 많다.
흔하진 않으나 한국사람의 성 가운덴 두 음절로 이뤄진 것들도 있다. 선우, 제갈, 황보, 사공, 남궁, 독고 같은 성들이 그렇다. 또 고전(古田), 길강(吉岡), 길성(吉省), 망절(網切)처럼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생긴 일본계 귀화 성도 있다. 이런 두 음절 성을 지닌 사람들은 이름 두 음절과 함께 네 음절 성명을 지니게 된다. 본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연기인 선우은숙씨나 가수 남궁옥분씨가 그 예다. 그러나 두 음절 성을 지닌 사람들은 자식 이름을 외자로 지어 ‘성명 석 자’의 관습을 존중하는 예가 적지 않다. 조선일보 주필을 지낸 소설가 선우휘씨나 제5공화국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지낸 사공일씨의 (조)부모가 그랬을 게다.
한국사람의 성명이 이렇게 세 음절로 일반화한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다. 중국사람들도 성 한 음절(글자)에 이름 두 음절인 것이 상례다. 또 흔히 이름 두 음절 가운데 한 음절로 항렬을 드러내 왔다. 그래서, 이름으로 선호하는 글자가 서로 조금씩 다르고 두 나라에 고유한 성들이 있긴 하지만, 성명이 한자로 표기되면 당사자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 1970년대 이후 일부 한국인들은 자식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고유어로 지으며 언어민족주의를 실천했다. 그리고 이런 고유어 이름(소위 ‘한글 이름’)의 등장과 함께 한국어 성명의 음절수 제약이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김·이·박 등 큰 성씨 비중 높고 성씨 대다수가 한 음절… 유럽 보다는 다양하지 못해
그 기다란 이름 탓에 언론에도 오르내린 박차고나온놈이샘이나씨나 황금독수리온세상을놀라게하다씨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겠으나, 그렇게 별나지 않더라도 고유어 이름이 두 음절 제약에서 풀려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젊은 국문학자 권보드레씨도 그런 경우다. 그러나 고유어로 이름을 지을 때도, 한국인들은 ‘성명 석 자’의 관습을 따라 두 음절 이름을 짓는 일이 많다. 예컨대 (역시 본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연기인 한고은씨나 한예슬씨가 그렇고, 문학평론가 정끝별씨가 그렇다. 그것은 자식의 이름을 너무 이질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부모의 배려와 관련 있을 게다. 주류 한자어 이름으로부터 떨려나려는 고유어 이름의 원심력을 두 음절이라는 관례의 구심력이 맞버텨주는 것이다.
너나들이에 한결 관대한 유럽인들, ‘엘리자베스’를‘리즈’‘베티’ 등으로… 애칭형·지소형 이름 많아
‘성명 석 자’ 관습의 해체는 언어민족주의자들의 고유어 이름보다는 귀화인들의 외국어 이름에서 더 큰 동력을 얻을지 모른다. 최근의 귀화인 가운데는, 이한우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진 독일 출신 방송인 이참씨나 러시아 출신 축구선수 신의손씨처럼 한국식 성명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본디 성(명)을 그대로 쓰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초 <주간한국> 의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는 필리핀계의 골라낙콘치타와 귈랑로즈, 베트남계의 누그엔티수안, 태국계의 남캉캉마, 방글라데시계의 루비악달 같은 성씨가 있다고 한다. 어차피 한국인으로 귀화했으니 한국식 성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있을 수 있겠으나, 한국 성씨의 다양성을 위해서 본래 성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도 나쁠 것 없어 보인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에선, 귀화인들이 이름은 몰라도 성은 바꾸지 않는 것이 상례다. 주간한국>
현대 유럽인들의 성명은 이름(퍼스트 네임)과 성(라스트 네임) 둘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가운데이름(미들네임)이 있어도 일상적으론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가운데이름이 들어간 성명은 얼마쯤 귀족적으로, 다시 말해 젠체하는 듯 들리기 때문이다. 현대 이전에는 그런 가운데이름들이 둘 이상 나열되기도 했다. 독일관념론을 완성한 철학자 헤겔의 정식 이름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고,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를 이끈 시인 실러의 정식 이름은 요한 흐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다.
이름 뒤에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나란히 붙이는 일이 흔한 스페인어권에서는 성명이 세 부분으로(스페인어권에선 이름이 둘인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그 경우엔 네 부분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가르시아는 아버지 성이고 마르케스는 어머니 성이다. 기혼 여성은 어머니 성을 넣을 자리에 전치사 ‘데?de)를 앞세운 남편 성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버지 이름을 변형한 부칭(父稱)을 이름과 성 사이에 넣는 러시아어권 사람들의 성명도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할 수 있다.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은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라는 성명만 들으면 이 사람 아버지의 이름이 콘스탄티노프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한국인의 성은 가짓수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김, 이, 박, 정, 최 같은 큰 성씨의 비중이 워낙 높아 외국인들 눈에는 한국인 대부분이 같은 집안 사람처럼 보인다. 한자가 다르다거나 같은 한자라도 본관이 서로 다르다고 해 봐야 외국인들을 쉽게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인 성의 다양성이 모자란 데는 큰 성들의 비중이 높다는 사정말고도 성씨 대다수가 한 음절이라는 사정이 개입하고 있다. 반면에 이름 두 자는, 비록 이름에 잘 쓰이는 한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두 글자의 순열로 이뤄지므로 성보다는 한결 다양하다. 그래도 큰 성씨의 비중이 워낙 높고 특정한 이름들(이나 한자들)이 선호되는 터라 동명이인이 흔하다. 문단에서만도 김명인이나 채광석이라는 이름을 거론할 땐, ‘어느 김명인’이고 ‘어느 채광석’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는 일상적으로 채용되는 이름의 가짓수가 한국보다 적다. 현대유럽어 이름들은 대체로 성서나 고대 역사에 등장했던 이름들이다. 그 이름들은 언어에 따라 조금씩 형태를 달리한다. 예컨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의 히브리어를 어원으로 삼은 영어 이름 ‘존’은 프랑스어 이름 ‘장’, 독일어 이름 ‘요한’이나 ‘요하네스’나 ‘한스’, 스페인어 이름 ‘후안’, 이탈리아어 이름 ‘조반니’, 체코어 이름 ‘얀’, 러시아어 이름 ‘이반’ 따위에 해당한다.
유럽인들은, 관습적으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은 자기 언어형태로 변형해 부르고, 덜 알려진 사람이나 현대인은 현지 언어형태로 부른다. 예컨대 세례 요한은 영어에선 존, 프랑스어에선 장, 스페인어에선 후안이다. 그러나 영국인 필부 존 스미스(John Smith)는 유럽 어디에서나 John이다.
또 잔 다르크(Jeanne d’Arc)는 영어로 조운 어브 아크(Joan of Arc)지만, 영국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조운 로빈슨(Joan Robinson)은 유럽 어디에서나 Joan이다. 한국인들이 중국인들 이름을 부를 때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 이전 사람은 한국어 한자 발음으로 부르고 그 이후 사람은 중국어 한자 발음으로 부르는 것을 설핏 연상시키는 관습이다.
유럽인들에겐 한국의 김, 이, 박에 견줄 만한 큰 성이 (거의) 없으므로 성의 변별력은 한국보다 크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특정한 이름들에 대한 선호가 집중적이어서 동명이인이 반드시 우리보다 적다고는 할 수 없다. 그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만 말하면, 17세기 철학자를 가리키는지 20세기 화가를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다. 어떤 저명인사가 제 아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퍼스트네임만이 아니라 미들네임까지를 고스란히 물려주었을 땐 더 그렇다. 올리버 웬델 홈스가 그 예다. 올리버 웬델 홈스는 19세기 미국 내과학계와 문학계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도 올리버 웬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아들은 자라 미국 법조계의 정상에 올랐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이라는 유명한 발언은 ‘위대한 반대자’(the Great Dissenter)로 불렸던 이 법률가의 입에서 처음 발설됐다. 그를 아버지 올리버 웬델 홈스와 구별하기 위해선 성명 뒤에 ‘주니어’를 반드시 붙여야 한다.
유럽어 이름에는 흔히 애칭이 있다. 애칭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형태의 일부분을 잘라내 버리거나, (그 남아있는 형태에) 지소사를 붙이는 것이다. 영어 이름의 경우 가장 흔한 지소사는 -y나 -ie다. 이를테면 ‘일리저버스’(‘엘리자베스’)는 앞뒤를 잘라내고 ‘리즈’라 불리거나, 뒷부분에 지소사를 붙여 ‘베티’로 불린다.
또 ‘토머스’는 뒤를 잘라내고 ‘톰’이 되거나 ‘톰’에 지소사를 붙여 ‘토미’가 된다. ‘수전’과 ‘수’와 ‘수지’, ‘리베커’와 ‘리버’와 ‘베키’, ‘신시어’와 ‘신스’와 ‘신디’, ‘새뮤얼’과 ‘샘’과 ‘새미’, ‘에드워드’와 ‘테드’(‘에드’)와 ‘테디’(‘에디’), ‘로버트’와 ‘봅’과 ‘보비’, ‘윌리엄’과 ‘빌’(‘윌’)과 ‘빌리’(‘윌리’), ‘티머시’와 ‘팀’과 ‘티미’, ‘제임스’와 ‘짐’과 ‘지미’, ‘마이클’과 ‘마이크’와 ‘미키’의 관계도 이와 같다.
이런 애칭형 이름이나 지소형 이름은 영어 바깥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스페인어에서 ‘호세’와 ‘페페’, ‘프란시스코’와 ‘파코’, ‘루이스’와 ‘루초’, ‘안토니오’와 ‘토뇨’, ‘돌로레스’와 ‘롤라’, ‘그라시엘라’와 ‘첼라’, ‘에르네스토’와 ‘네토’, ‘과달루페’와 ‘루페’, ‘기예르모’와 ‘메모’, ‘콘셉시온’과 ‘콘차’는 같은 이름이다. 이미 애칭인 ‘콘차’는 지소사가 덧붙어 ‘콘치타’가 되기도 한다. 스페인어 이름의 가장 흔한 지소사는 -ita(여성)와 -ito(남성)다. 톨스토이를 통해 유명해진 러시아 민담 덕분에 ‘바보’의 대명사가 된 러시아어 이름 ‘이반’은, 더 친근하게는, ‘바냐’, ‘바뉴쉬카’, ‘바네츠카’, ‘바뉴쉐츠카’, ‘이바뉴쉬카’ 따위로 불린다. 한국어에서와 달리 유럽어에서 이렇게 애칭형 이름이 발달한 것은 유럽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너나들이에 한결 관대하다는 점과 관련 있을 게다.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의 대부분 기간동안 성(姓)은 사회구성원 일부만이 지닐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성을 갖게 된 것은 평등이라는 가치가 선양되고 주민집단에 대한 국가의 ‘관리’가 보편화한 국민국가의 출현 이후다. 한국의 경우에도 갑오경장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고 민적부가 만들어진 뒤에야 모든 사람이 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노비를 포함한 하층민 대다수는 성이 없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통혼의 신분적 제약이 크게 흔들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늘날 한국인 대부분의 (적어도 한쪽) 조상은 성이 없는 사람들--노비이거나 노비에 가까운 하층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먼 조상이 아니라 불과 한 세기 남짓 전의 조상 말이다. 허망한 것이 ‘집안’ 자랑이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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