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하게 힘들어서 다신 대하소설을 쓰지 않으려 합니다. 당분간은 손자 세대를 위한 아동문학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소설가 조정래(64)씨가 일제 침탈기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그린 대하소설 <아리랑> 의 100쇄 돌파를 기념해 2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아리랑>
1997년 100쇄를 돌파한 <태백산맥> 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을 세운 <아리랑> 은 1990년 12월 한국일보에 연재를 시작해 95년 7월 완간된 작품. 100쇄를 넘긴 제1권을 포함, 12권 모두 합쳐 806쇄가 제작돼 총 330만부가 판매됐다. 지금까지 100쇄를 넘은 한국소설은 <태백산맥> 과 <아리랑> 외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96), 최인훈의 <광장> (1997), 이청준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 (2000), <당신들의 천국> (2003) 등이 있지만, 완간후 10년 이내 기간에 100쇄를 돌파한 것은 <아리랑> 이 처음이다. 아리랑> 당신들의> 낮은> 광장> 난장이가> 아리랑> 태백산맥> 아리랑> 태백산맥>
“37년간 작가생활을 하면서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은 민족과 조국을 통해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리랑> 이 100쇄를 넘는 걸 보니 나의 확신이 대중들에게 올바르게 받아들여졌구나, 내가 옳았구나 싶어 기쁩니다. 세계화의 물결로 인해 민족에 대해 말하는 게 마치 범죄인 것처럼, 시대착오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이상은 민족의 존엄과 독특성을 인정하는 위에서 실현될 수 있는 거니까요.” 아리랑>
그는 <아리랑> 을 쓰기 위해 일본, 만주, 중앙아시아, 하와이에 이르는 민족이동의 길고 긴 발자취를 지구 세 바퀴 반이나 돌며 취재했다. 매일 35~40매씩 원고를 쓰다 오른팔이 마비돼 두 달간 고생을 하기도 했다. “20~30장의 파지를 내면서 대하소설의 첫 장을 씁니다. 그러면 1만5,000장 분의 1장이지요. 그때의 막막함이란 끝이 안 보이는 깜깜한 터널 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지긋지긋하게, 치가 떨리도록 힘들어요. 그래서 이제 대하소설은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저는 그만 쓰려고 합니다.” 아리랑>
대신 그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생까지 읽을 수 있는 50권짜리 아동물을 집필하는 새 계획을 세웠다. “손자를 둘 봤는데 이게 아주 노년의 재밉디다. 30년 전 아들 키울 때 보니 아동물이 아주 형편없어요. 이대로는 읽힐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대하소설 쓰느라 바빠 직접 쓸 시간이 없었죠.”더 이상 손자들에게 나쁜 글을 읽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용운, 홍범도, 안중근 등 우리 근현대 위인 15명, 마더 테레사, 간디 같은 세계 위인 15명 등 어린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숭엄한 이들의 삶을 전기로 쓸 계획을 세웠다. “거기다 우리 전래동화 20권을 합해 총 50권짜리를 낼 계획이에요. 한 2,3년 여기에 몰두하면서 틈틈이 내 작품도 1,2편 같이 쓸 생각입니다.”
그는 장기 침체에 빠진 한국문학에 대한 진단과 해법도 제시했다. “<아리랑> 을 낼 때도, <한강> 을 낼 때도 사람들은 모두 ‘이제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대하소설은 읽히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모두 6개월 이내에 100만부가 넘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 5,000만명 중 심각하고 진지한 문학을 읽고 싶어하는 40만~50만명의 독자는 늘 대기상태입니다.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쓰는가가 문제지 풍조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한강> 아리랑>
그는 우리 소설의 왜소화가 인터넷과 TV, 휴대폰 같은 문명 이기의 위협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들 자신의 탓도 크다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전부 주인공이 ‘나’예요. 1인칭으로는 단편밖에 못 씁니다. 장편에는 적게는 다섯에서 열 명이 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나’를 통하지 않으면 다른 인물들은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러면 능동적 인물이 안 되고 피동적이 되죠. 한국소설의 문제는 여기부터라고 진단합니다. 인생은 다면적이고 총체적이기 때문에 이걸 그리려면 3인칭으로 써야만 해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작가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그는 “현실정치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은 작가의 책무지만, 직접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자기파멸인 동시에 문학에 대한 배반”이라고 말했다. “정치가들이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에요. 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오류를 범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인데, 그건 문학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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