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2가 SK텔레콤 사옥 2층에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 40평정도의 공간 사방에 200여종의 휴대폰이 빽빽하게 놓여있다. 언뜻 보면 고객들을 위해 휴대폰을 전시해 놓은 판매점 같다. 그렇지만 이곳은 고객이 아닌, 1,000여개에 이르는 SK텔레콤의 협력사들을 위한 공간이다.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는 SK텔레콤에 무선 인터넷 콘텐츠를 개발해 제공하는 업체(CP)들이 콘텐츠를 본격 서비스하기에 앞서 무료로 시험해 보는 곳이다. 워낙 시중에 많은 휴대폰이 나와 있다 보니 기기에 따라서 개발한 콘텐츠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이곳에서 미리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SK텔레콤에 따르면 CP들은 이곳을 무료로 이용함으로써, 연간 5억원에 달하는 시험용 휴대폰 구입비와 통화료를 줄일 수 있다.
단순 비용절감 뿐 만은 아니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서 기업 이미지 제고 및 개발시기 단축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는 협력업체들의 요람인 셈이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센터개설 때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이 곧 SK텔레콤의 기술력으로 돌아온다”며 “앞으로도 협력업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김 사장의 약속은 해외 동반 진출로 이어졌다. 지난해 ‘힐리오’라는 이름으로 미국 이동통신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SK텔레콤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업체들에게도 세계 시장 동반 진출이라는 날개를 달아줬다.
힐리오에서 제공하는 각종 무선 콘텐츠 서비스는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를 거친 국내 중소업체들이 개발했다. 이 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미국 이동통신업체들로부터 협력 제의까지 받았다.
힐리오의 과금 시스템을 개발한 엔텔스 심재희 사장은 “힐리오 서비스 이후 스프린트, 버라이존 등 미국 이동통신업체들의 공동 사업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며 “미국보다 4~5년 앞선 한국의 무선 인터넷 콘텐츠나 솔루션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이 미국 및 베트남에 진출하기 위해 협력업체들과 준비한 상생전략은 ‘천천히, 그리고 차근차근’ 준비한다는 뜻의 ‘슬로 & 스테디’(Slow & Steady)였다.
베트남과 더불어 미국 진출을 위해 SK텔레콤과 협력업체들은 1년4개월을 준비했다.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있는 힐리오 연구센터에는 100여명이 넘는 중소 협력업체 연구진들이 파견돼 근무해 왔다.
또 SK텔레콤은 로스앤젤레스 윌셔가에 있는 힐리오 본사 2개층에 협력업체들을 위한 상주시설을 마련하고 파견직원 체제비까지 계약금에 포함시켜 지원했다. 실제로 이곳에는 개발이 완료됐지만 서비스 안정화와 개선을 위해 23개 협력사에서 100명의 직원이 파견돼 근무했다.
현재 파견인력은 30여명으로 줄었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국내 중소업체들이 SK텔레콤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콘텐츠 개발에 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지원 덕분에 협력업체들은 힐리오를 통해, 올해 1,000만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릴 수 있게 됐다.
필링크, 엔텔스, 미디어코러스, 이노에이스, 컴투스, 엑스씨이 등 23개 협력업체가 쏟아낸 무선인터넷 서비스들은 할리우드의 톱스타 톰 크루즈를 반하게 만들었고, 현지 언론들로부터 “획기적인 서비스”라는 찬사를 받았다. 힐리오 이동영 부장은 “협력업체들이 없었다면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협력업체들이 SK텔레콤의 미국 진출을 위한 한쪽 날개가 돼줬다”고 칭찬했다.
무선인터넷 콘텐츠를 전송받을 수 있는 서버 시스템을 개발한 필링크 최선홍 사장은 “힐리오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 선진국의 무선통신환경을 벤치마킹하는 동남아, 중국에도 중소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며 “상생경영의 모범 사례로 남을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SK텔레콤은 중소 협력업체들을 위해 연간 6,700억원의 이르는 재정지원, 신기술 개발과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34억원을 협력업체들의 신기술 개발비로 지원했으며 지난해 10월에 국내 기업중 처음으로 협력업체 교육시설인 ‘SK상생 아카데미’를 개원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상생경영은 최태원 SK그룹회장의 ‘행복경영론’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기업활동의 목표는 주주, 고객, 임직원 및 협력업체까지 포괄하는 행복창출에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중소 협력업체들의 역량강화를 위해서는 선진 경영기법 및 기술교육이 필요하다”며 “상생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중소기업의 역량 향상은 물론이고 인재충원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 텔코웨어 금한태 사장/ "SKT에 핵심기술 납품…덕분에 베트남 동반진출"
“SK텔레콤 덕분에 해외 진출에 물꼬를 텄습니다.”
이동통신 관련기술 개발업체인 텔코웨어의 금한태 사장은 SK텔레콤이 2003년 베트남에서 ‘S폰’이라는 이름으로 현지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할 때 동반 진출했다. SK텔레콤은 텔코웨어를 통해 해외에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텔코웨어는 숙원 사업인 해외 진출의 과제를 풀려는 양자간 윈-윈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텔코웨어가 제공하는 기술은 이동통신의 핵심인 홈로케이션(HR) 기술과 콜키퍼 서비스다. HR은 기지국내 휴대폰 가입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이며 콜키퍼 서비스는 휴대폰이 꺼졌을 때 걸려온 전화번호를 나중에 가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금 사장은 “두 가지 모두 휴대폰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라며 “따라서 베트남 서비스 가입자가 증가할수록 수익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현재 S폰 가입자는 150만명이다.
텔코웨어와 SK텔레콤의 인연은 베트남 진출 이전부터 이어져왔다. 금진호 전 상공부장관의 아들인 금 사장은 동부그룹 미국 지사장을 그만두고 2000년 현재 회사를 창업했다. 이동통신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본 그는 HR 등 핵심기술을 개발, SK텔레콤에 납품했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기술력이 검증된 업체와 해외 진출하는 것이 현지에서 안정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텔코웨어를 선택했다. 금 사장은 “중소업체들이 해외사업을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현지의 경제정책”이라며 “현지 사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SK텔레콤이 든든한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텔코웨어는 앞으로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SK텔레콤과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서도 협력관계를 이어갈 계획이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 SK "교육 통해 상생"
SK그룹의 상생협력 프로그램들은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최태원 SK회장이 2005년부터 강조한 ‘행복 동반자’ 경영에 따른 조치다.
행복 동반자 경영이란 협렵업체들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고 공동으로 경영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경영방침. 한마디로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방법을 알려줘 장기적인 생존 기반을 지원해주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2005년부터 협력업체에 대한 현금결제 대폭 확대, 해외진출 지원, 최저가 입찰방식 탈피 등 3대 상생원칙을 내걸고 교육프로그램을 확대했다.
계열사가운데 SK텔레콤은 ‘파트너 온 아카데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진다. 이 교육은 경영전략, 재무회계, 마케팅, 어학 등 60개 과정으로 구성됐으며 지난해에만 1,281개 협력사에서 2만여명의 직원이 교육을 받았다.
SK C&C는 총 112개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분야별로 전문화된 기술교육을 협력업체들에게 실시하고 있다. SK건설도 협력업체 경영지원 프로그램인 ‘With-us’를 통해 전문 기술 및 경영기법 자문 등을 온라인으로 신속하게 제공하고 있다.
SK 기업문화실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미비한 협력업체들이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상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현재 약 300개의 온ㆍ오프라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의 체질강화를 위해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SK그룹의 협력업체 해외동반진출 주요 내용
SK(주) 새한하이테크, 공명테크, 일성기업 등과 태국, 일본, 대만 진출, 25억원수주
SK텔레콤 RF원도우 일본 중계기 수출지원
10개 협력사, 베트남 동반진출
23개 협력사, 미국 힐리오 사업 동반진출
SK C&C 인프라밸리와 인도에서 온라인 음악서비스 개시
SK건설 쿠웨이트, 태국에 협력업체와 동반진출, 720억원 수주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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