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흔히 인체의 혈액에 비유된다. 피가 잘 돌아야 온 몸에 영양소가 균형 있게 공급되듯이 한 국가의 경제도 혈액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성장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돌이켜보면 참여정부 출범 당시 우리 금융시장은 사실상 동맥경화 상태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SK 글로벌 분식회계사건, 내수경기 위축,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신용불량자 증가, 신용카드 회사 유동성 위기 등 크고 작은 위기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 리스크 관리는 무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시행한 처방이 단기적인 효과를 봤지만, 서서히 그 후유증도 가시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4년간 금융시장은 내외적으로 큰 악재 없이 무난히 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분식회계 파문에 처했던 SK는 쓴 보약을 먹었다는 듯이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LG카드가 고가에 매각되는 등 애물단지였던 카드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우리 한국인의 저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신용불량자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점을 향하고 있다.
금융시장도 많이 달라졌다. 선진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방카슈랑스 제도가 도입됐고 사모투자펀드에 대한 규제도 완화되고 ELS, ELF 등 다소 생소했던 선진 금융상품도 선보였다. '펀드'열풍은 간접금융상품의 미래와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금융법 체계도 종래의 업종별 체계에서 기능별 체계로 개편하고 자본시장관련법령을 통합해 세계적인 투자은행의 출현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도 큰 성과중의 하나이다. 참여정부가 칭찬보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지만, 정권 출범 초기 금융위기를 매우 슬기롭게 극복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경우 참여정부 초창기 당면한 금융위기와 마찬가지로 '리스크 관리'라는 공통점을 띠고 있다.
문제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인하 등 일련의 주택담보대출 규제에서 보듯 정부의 금융시장 수시개입 체제가 고착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우리 금융시장에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 시장의 자율성은 악화
참여정부 출범 이후 금융기관 관계자들이 현실과는 무관하게 과거에 비해 '관의 입김이 더욱 커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정책효과에만 너무 주목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누구나 인정하는 문제이지만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세심한 분석과 주의가 필요하다.
하나 더 아쉬운 점은 금융연관비율이 아직 선진국에 비하여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실물경제에 대한 금융경제의 발달정도는 금융자산총액을 명목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눈 비율인 금융연관비율로 측정하고 이 비율이 높으면 금융심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금융연관비율은 2001년 이래 아직 6배 수준에 머물러 있어 미국의 9배, 일본의 11배 수준에 비하여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향후 금융정책의 장기적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승희 우리금융그룹 전무이사ㆍC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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